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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06/08  김지영
한국의 모범 문중, 부평이씨(富平李氏) 진사공(달)파(進士公(達)波) 탐방

시조(始祖) 이희목(李希穆) 생가터 복원

계양의 역사 475년 고구려 주부토군(主夫吐郡)으로 시작

 

이익진(李翼振) 종친회장 조상의 얼을 잇다.

 

방방곡곡 뉴스

이익진 부평이씨 진사공달파 종친회장(전 계양구청장)님을 모시고 계양과 인천의 역사 그리고 근래 인천시와 계양구의 발전사를 알리는 인터뷰를 하였다.

 

이익진 회장님은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

 

 

이익진 회장(전 계양구청장)

 

 

이익진 회장

우선 김지영 방방곡곡 뉴스 대표님이 저희 문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곳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 208번지에서 태어나 부평초등학교, 인천 동산중 ․ 고등학교, 건국대학교 법학과를 나왔으며, 여기서 태어나 76년 동안 살며 학교를 다녔고, 7월 20일이 생일이니 만 75세입니다.

 

방방곡곡 뉴스

부친께서도 이곳에서 태어나셨는지요?

 

이익진 회장

저희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이곳 같은 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서구로 넘어가는 봉오대로가 크게 나면서 집이 없어졌습니다. 현 작전동 마을금고가 저희 집 텃밭이었습니다.

 

시조 이희목(李希穆) 할아버지

 

김지영 대표/이익진 회장
방방곡곡 뉴스

그럼 부평이씨 시조께서도 우리 계양구에서 태어나셨나요? 부평이씨가 탄생된 연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이익진 회장

저희 문중시조 이희목(李希穆) 할아버지께서는 고려(太祖)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공로로 삼중대광(三重大匡) 壁上功臣(벽상공신)에 오른 삼한공신이었습니다. 태조 왕건이 지역의 호족세력으로 나라를 통치할 때 부평의 호족장이어서 성씨를 이씨로 받아 계양구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살며 이희목 시조의 증손(曾孫)인 이정공(李靖恭)이 1062년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1062年(高麗 文宗16年) 試禮部外郞(시예부외랑),知南原府事(지남원부사),侍御史(시어사),翰林學士(한림학사),禮部尙書(예부상서),兵部尙書(병부상서),參知政事(참지정사),修國史(수국사)를 거쳐 1083年 中書門下侍郞平章事(중서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르고,1086年 門下侍中(문하시중),判尙書吏部事(판상서이부사)에 이르러 富平伯(부평백)에 封(봉)해짐으로써 後孫(후손)들이 本貫(본관)을 富平(부평)으로 하고 있습니다.

 

계양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이 2차에 걸쳐 탐사한 결과 계양구 목상동 일원 약 200평가량이 생가터였던 것을 고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계양문화원은 계양구청에 인천광역시 사적지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저희 문중에서는 이희목 시조의 생가터를 복원하여 부평이씨와 계양의 연원을 밝혀나가겠습니다.

 

 

 

 

이희목 시조의 후손들

 

방방곡곡 뉴스

이희목 시조의 후손으로 나라에 공헌하신 분들을 몇 분 소개해주세요.

 

이익진 회장

우리 부평이씨는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이신 시조 충민공(忠敏公) 이희목(李希穆) 할아버지를 시조(始祖)로 모시고 천여 년을 면면히 이어온 한 핏줄 천년 종통의 혈통지친(血統至親)입니다.

 

고려 왕조에서는 네 분의 재상(宰相)을 배출한 당대의 문벌귀족(門閥貴族) 가문으로 고려의 문민시대의 전성기를 이루셨던 문하시중(門下侍中) 四세조 문충공(文忠公) 이정공(李靖恭)과 아드님 문하시중(門下侍中) 五세조 이위(李瑋) 장숙공(壯肅公) 부자(父子)분이 이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인 수상(首相)을 지내셨으며 사세조 문충공의 큰 아드님 되시는 이숙(李璹)께서는 참지정사(參知政事:정이품)로 셋쩨 아드님 평간공(平簡公) 이순(李珣)은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종이품)로 공헌하신 행적(行蹟)과 위업(偉業)이 고려사(高麗史)와 사기(史記)에 전해집니다.

 

문충공(文忠公)께서는 사후에 순종(順宗) 묘정(廟廷)에 배향되신 체협공신(諦祫功臣)이 되셨고 장숙공(壯肅公)께서는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치사(致仕)하신 후 다시 중서령(中書令)에 오르시어 진정공신(鎭定功臣)이 되시어 식읍(食邑) 이천오백호(二千五百戶)에 식실봉(食實封) 오백호(五百戶)을 하사(下賜) 받으셨습니다.

 

조선 왕조에서는 삼십 여분이 대과에 급제하시어 팔좌구경(八座九卿)을 비롯하여 충절(忠節)과 청렴(淸廉)으로 대대로 우국봉공(憂國奉公)하셨고 세 분의 충신(忠臣)과 수많은 효자 열녀(孝子烈女)로 충효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조에서 공헌하신 분들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는 없으나 대표적인 분으로 十九세조 이세화(李世華) 충숙공(忠肅公)께서는 육조(六曹)의 판서(判書)을 두루 역임하시고 가문의 최고 영예로 꼽히는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셨으니 문중의 종훈(宗訓)인 충(忠) 효(孝) 청(淸) 겸(謙)의 표상(表象)이 되셨습니다.

 

빛나는 조상님의 위업(偉業)과 음덕(蔭德)을 길이 선양(宣揚)하며 천년 종통의 명문으로 조상님의 영광을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데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익진 회장의 인천시 공무원으로 업적

 

방방곡곡 뉴스

부평이씨의 가문이 우리 계양은 물론 인천의 중심이 되었음은 역사적인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훌륭한 문중의 얼을 이어받아 이익진 회장님은 오랜 공무원으로 인천과 계양구 발전에 큰 공을 세워 저희에게 전수해 주셨습니다.

 

이 회장님은 건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공원시험을 통하여 공직을 시작하셨는데 언제부터 인가요?

 

이익진 회장

처음 경기도에서 시험을 봐 공무원이 되어 경기도 양평군으로 첫 발령을 받아 2년간 근무하고, 인천시로 전근하여 1991년 5월까지 약 27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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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공무원을 하면서 남긴 업적을 말씀해주십시오?

 

이익진 회장

인천시에 기여한 것은 송도신도시계획이 수립된 것인데 도시계획과장으로 있을 때 문학경기장 공사시 나오는 돌과 흙으로 송도를 조금씩 매립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의 시작은 이재창 전 인천시장이 건설교통부 차관으로 있을 때 국가의 정책사업인 국제공항이 시화, 김해, 충주 등 지역을 망점했으나 도시계획과장 당시 청와대에 10번 이상 올라가 영종도로 유치하는 것에 대하여 역설하였고, 결국에는 인천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인천시에 돈 벌어준 것은 인천시 주택행정계장으로 있을 때 부평 현대아파트 뒤 현대백화점 건설시 1천 여평에 동사무소를 지어 기부체납 받게하였습니다.

 

또한 동아아파트와 동아백화점을 지으면서 땅 500평을 받아서 동사무소 지었으며, 공유수면 매립허가로 갯벌을 막아 일군 땅으로 이 지역을 이용하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도로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행도로인 인천제철부터 서구 주물단지 구간 폭 50m 도로와 지선까지를 기부체납 하도록 종용한 다음 기부체납과 동시 준공처리를 해서 인천시의 재정 수입에 크게 기여 했고, 지금도 이도로는 청라지구의 중심도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천시 공무원 퇴임, 1995년 인천시의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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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공무원 퇴임 후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이익진 회장

1991년 공무원을 퇴임 후 인천시의회 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고 대한건설협회 인천시 사무처장으로 근무 하다 제2대 시의원에 출마하여 1995년 제2대 시의원이 되었습니다. 제 2대 시의원에서는 건설분과위원장으로 공무원 재직시 계획했던 업무를 두루 챙기고, 특히 인천국제공항공사, 송도 LNG공사, 영흥발전소 건설을 주민들을 설득하여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LNG기지 건설에 관여하여 인천시민에게 LPG가격을 전국에서 제일 싸게 공급하였습니다. 그 논리는 가스관이 인천을 통과해서 각 지역으로 공급되는데 LNG기지로부터 가까운 인천은 서울에 비하여 가스 값이 싸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서울과 도시가스 가격이 같을 수는 없다. 라고 주장하여 현재는 가격이 같지만 그때에는 전국에서 가장 싸게 공급되었습니다.

 

제2대 민선 계양구청장이 되어

 

이익진 전 계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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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원으로 인천시 살림을 4년간하다 민선 제2대 계양구청장에 당선 되셨는데 그 때의 각오는 어떠했습니까?

 

이익진 회장

인천의 역사가 475년 고구려 주부토군(主夫吐郡)으로 시작되었는데 주부토군이 우리 계양입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이 인천을 만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조상이 만든 이 지역을 조상의 얼을 받들어서 잘 사는 고장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제가 시의원이 되었고 구청장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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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구청장이 돼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이익진 회장

현재 우리 계양구의 일 계양구청사 건립, 계산신도시 건설 등 90%이상을 제가 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방방곡곡 뉴스

현재 계양구신도시는 계양의 중심으로 다양한 가치가 있는데 계산신도시 건립 연유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시오.

 

이익진 회장

제가 인천시 도시계획과장으로 있을 당시 기획된 도시입니다. 택지개발을 하려면 전체 면적의 25%를 공공용지로 해야 합니다. 공원, 도로 등을 내고 나머지를 가지고 주거, 상업 지역을 하는데 계산신도시는 전체 면적의 1/3정도를 상업지역으로 확보하였습니다.

 

상업지역이나 준공업지역은 시장의 권한이 아닙니다. 구의 인구나 면적에 비례하여 상업지역을 주고 준공업지역을 주는 종량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인천시 도시계회과장을 할 때 계양구에는 대표적인 상업지구가 없는데 신도시지역에 상업지구를 많이 만들어서 계양구 경제발전의 기반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상업지역을 많이 지정해달라고 위원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해서 성립시켰습니다.

 

그리고 계산신도시 내에 차없는 거리,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였으나 현 박형우 구청장이 차있는 거리로 전환시켜 아쉬움이 큽니다.

 

저는 차없는 거리를 정착시켜 기존의 업종과 다른 다양한 점포를 유치시켜 서울의 인사동과 같은 거리를 만들고 구청 뒤 큰 도로를 양쪽으로 주차장을 만들어 외국인을 비롯한 계양구민, 관광객들을 유치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교대역지하에서 나오는 하루 900톤 물을 활용하여 서운동 하천으로 보내서 물의 도시로 만들려고 60억을 투자하려 했으나 무산되었습니다. 앞으로 경남 아파트 주변에는 하천의 오염이 진행 될 것입니다.

 

 

계양구 발전을 위한 좋은 말씀

 

방방곡곡 뉴스

계양구청장을 역임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습니까?

 

이익진 회장

계양구는 초대 이규보 계양도호부사가 부임하였고, 정명(定名) 800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곳으로 전성시대를 재현해야 합니다.

 

전국에서 제일 교통이 좋은 지역으로 인천지하철 1호선, 경인고속도로, 김포공항, 신공항고속도로와 철도, 경인아라뱃길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그러나 인구가 점차 줄고 있습니다.

 

제가 구청장 재임시 계양산성복원을 위해 10억원을 받아 추진을 하였고, 계양산성을 복원하여 내부에는 진달래 동산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현재 박형우 구청장께서도 계양산성복원을 추진 중이며 특히 방방곡곡은 “계양산성복원 시민의 힘으로 복원하자” 라는 운동을 6개월간 30만 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펼치고 있는데 시대에 맞는 문화부흥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인천농업기술센터 이전 문제인데 농협기술센터 십정동 동암역 앞에서 계양구 다남동으로 옮기기 위해 안상수 인천시장 당시 100억 예산을 세웠으나 송영길 시장이 당선되면서 이를 삭감했습니다.

 

현재 십정동 동암역 앞에 인천농업기술센터 부지를 처분하고 계양구로 이전하여 아라뱃길과 연계하여 계양구 발전과 앞으로 6차 산업의 활성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어린이과학관은 안상수시장 당시 계양산 동쪽 병방동에 건립하여 인천의 명품 교육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배드민턴 실내체육관과 양궁장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건립하였는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관리방안을 위해 양궁장을 천연잔디와 인조잔디로 구분하여 만들어서 대회가 끝나면 축구장으로 임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실현을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축구장으로 활용시켜야 합니다.

 

서운산업단지는 제 임기중에 시작하여 현 구청장께서 추진하고 있는데 문제점은 시공사를 선정하는데 경험 없고, 자본금도 1억 정도인 회사가 선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풍산금속을 이전하며 이득금의 40% 이상을 환수했어야 했습니다.

 

 

인천계양 코아루 센트럴파크 건설 문제는 사업자는 공영주차장부지 6천여평을 평당 170만원에 매입했는데 아파트 부지로 활용되면 평당 가격이 1천만원 가량 되는 겁니다.

 

건축허가는 계양구청장의 권한인데 건축허가를 내주는 조건으로 7층 쇼핑센터를 지어서 인천시에 기부체납하고, 이득금의 20%도 인천시에 주도록 하였습니다.

 

계양구민이 사용하는 공원도 아파트 부지로 들어 갔는데 정작 이권은 사업자와 인천시에 주어진 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이득금을 인천시가 아닌 계양구에 40% 이상을 환원시켜야 합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계양구청장과 계양구 지역구 시의원 ․ 계양구의원들이 나서야 겠습니다.

 

아라뱃길부근 건설문제는 계양구발전을 위해 협조하고있으나 아라뱃길 부근에는 아파트는 허가가 되지 않습니다. 그린벨트를 활용하여 체육시설 등 들어갈 수있는 시설로 추진해야 하며 점진적인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수도권쓰레기매립장 문제는 저희 계양구는 영향권 내에 있다하여 매년 10억원을 받는데 실질적인 운영위원도 없고 서구와 김포시에 비하여 다양한 권리를 찾지못하고 있습니다. 계양구에서는 권리를 찾아와야 됩니다.

 

또한 계양산에는 절터가 10여 곳이 있는데 그린벨트 내 가능한 사찰을 복원시켜야 하며, 둑실동 보호수, 태극기 박물관 건립, 선주지교회를 건축물 문화재로 등록 시켜야 하고, 박촌교회를 훼손시킨 것은 큰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가장 아쉬운 점은 인천보다 200여년 먼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평도호부 청사를 조기에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설부지는 안상수시장 당시 예비군훈련장이 이전되면 일부를 경인여대 확장부지로 하고 나머지를 사적(史蹟公園)으로 지정하여 부사청사를 건립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해서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익진 회장의 앞으로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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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진 전 계양구청장님의 계양구 사랑은 전 ․ 현직 계양구청장들의 지역 사랑 실천과 함께 역사에 분명하게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떠합니까?

 

이익진 회장

지역발전을 위해 당을 따지지 말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지역 발전이나 구민들이 잘 살 수 있고,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려합니다.

 

나이가 많다보니 정치는 안하고 당도 떠났습니다. 구청장을 그만두면서 탈당을 했습니다. 당이 있으면 공평성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지역 발전이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협조하겠습니다.

 

요즘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또한 보람을 느끼며 농사진 작물을 적은 양이지만 계양농협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에 공급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방방곡곡 뉴스

부평이씨 진사공달파 종친회장이며 전 이익진 계양구청장님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며 계양구의 진정한 역사를 알게 되었고 앞으로 지향해야 될 발전 방향도 제시 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계양구민과 자라나는 어린이, 학생, 청소년에게도 전해졌으면 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부평이씨 진사공달파종친회 제실 및 사무실

인천광역시 계양구 봉오대로 411(효성동)

전화번호 032-554-7408 총무 이규진(李圭振)

 

방방곡곡 뉴스 김지영(金智寧) 대표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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