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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12/09  김지영
가물치 사랑

 

 

오랜만에 재래시장엘 갔다. 온갖 생필품하며 먹거리들이 좌판에 즐비하다. 양편으로 늘어선 점포들을 기웃거리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생물가게엔 싱싱한 어패물이 그득하다. 그 가운데 가물치가 내 시선을 붙잡는다. 문득 47년 전 가물치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라일락 향기가 가득한 5월에 결혼해서 그 해 추석 때 강화에 있는 증조할머니 댁에 다니러 간 일이 있었다. 앞마당엔 몇 백년 된 느티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고 뒤란엔 노란 은행나무가 있어 운치 있는 집이었다.

 

시골이어서 일찍 날이 어두워지는가. 사뭇 을씨년스럽고 으스스 추운 날이었다. 할머니는 손주며느리가 왔다고 동네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셨다. 긴장한 탓이었을까. 인사를 드리고 나니 몸이 무척이나 피곤했다.

 

사랑방으로 건너갔다. 내가 올 줄 미리 알고 준비해 두었던가. 한지로 도배한 방이 정갈했다. 이부자리도 사각소리가 날 정도로 손질하여 꿰매 아랫목에 깔아 두셨나 보다. 피곤했던 터라 아랫목에 깔려 있는 이불속으로 발을 들여 넣었다. 온몸이 녹아내릴 만큼 따뜻한 기운이 시나브로 잠속에 빠져 들었다.

 

반시간이나 지났을까. 어머님이 모란꽃이 그려진 은색 양은 쟁반에 뒤뜰 감나무에서 딴 감 서너 개와 식혜 한 사발을 받쳐 들고 들어오셨다.

자기 전에 먹어라정이 담뿍 감긴 목소리였다. 그때 내가 먹은 그 식혜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초저녁에 따끈했던 방은 자정을 넘어 좀 식는가 했더니, 첫 닭이 울기 전에 다시 방이 따뜻해 왔다. 신랑에게 방이 다시 따뜻해 진 것 같다고 말했더니 아버님께서 군불을 지폈을 거야.” 했다. 나는 시부모님의 자식 사랑이 무한함을 느끼며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내가 음식을 무척이나 맛깔나게 먹었나보다. 이를 본 어머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을 오가며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칠 남매를 낳아 공무원의 박봉에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이 알뜰살뜰 살아오신 어머님이시다. 그런 어머님은 아들을 낳았다며 혹시라도 부정을 탈까 봐 국솥이며 밥솥을 따로 준비해 놓고 하루 여섯끼를 장만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내 몸무게는 무려 18키로그램이나 늘어나고 말았다. 그런데 당신께선 내가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그렇다며 중학생인 막내아들에게 동대문 시장에 가서 살아있는 가물치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온 식구들이 예쁜 조카가 생겨서 기뻐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 기쁜 탓이었던가. 어머님의 명령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시동생은 동대문 시장에 가서 가물치를 사들고 양회 봉투에 넣은 채 버스에 올랐다.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봉투안에 들어 있던 가물치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봉투가 찟어져 가물치가 버스 바닥에 마뒹굴어져 퍼덕거렸다. 버스에 탔던 승객들이 놀라 혼비백산했다. 가물치를 잡으려면 미끄러져 놓치고, 또 잡으려면 미끄러져 나갔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다. 보다 못한 승객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가물치를 잡아 교복상의를 벗어 싸들었다.

 

승객들의 입장에선 기절할 노릇이었을 게다. 그 중 한 분이 어린 학생이 가물치는 뭘 하려고?” 하고 물었다. “우리 형수님이 예쁜 조카를 낳았거든요.” 시동생은 씩 웃으며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만 버스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시동생이 가물치를 갖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버스에서 있었던 상황을 무슨 영화 이야기하듯 온 식구들에게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모두가 박장대소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날 시동생은 개선장군 같아 보였다.

 

그렇게 사연이 많은 가물치를 정성으로 다려 주셨건만 나는 한 모금도 먹을 수가 없어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부은 것이 아니고 어머님이 밥을 너무 맛있개 해주셔서 살이 찐 것 같아요.” 하자, “살찐 건 괜찮아 건강하면 된다.” 면서 미안해 하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셨다.

 

결혼 한 지 17년 만에 사고로 남편과 사별하고 그 이듬해 봄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들렸다. “어서 오너라.” 하며 내 두 손을 마주 잡고 어떻게 지냈느냐며 눈시울을 적시던 어머님을 보면서 가슴이 져며왔다. 그날 밤 당신께선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속에 밤새 잠 못 이루셨다. 나 또한 잠을 설쳤다.

 

하릇밤을 지내고 이튿날 나를 배웅하기 위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언덕빼기까지 나와 조심해서 가라,” 하시며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망연자실 서 계신 모습을 백미러로 보면서 굽이굽이 고비 고갯길을 휘돌아 오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막막하기만 했다. 그때가 거지반 30년이 흘렀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가슴시렸던 아픈 기억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았기에 가능했으리라. 그 후 어머님은 당신 아들을 앞세우고 억장이 무너지는 삶을 견디다 못해 급기야 뇌경색으로 고생만 하시다 3년 만에 세상을 뜨셨다.

 

이제 세월 속에 모든 걸 묻어 당신 나이를 훨씬 넘어 돌이켜 보니 세월의 갈피마다 어머님의 사랑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맴돈다. 며칠 전에는 강화에 있는 산소를 찾아 뵙고 해안도로를 돌면서 서산마루 넘어가는 석양을 보며 지난날의 아릿한 어머님의 마음을 혜아려 보았다.

 

그날 그때, 가물치가 오늘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어머님의 가물치 사랑을 오늘도 반추하고 싶다. 이양순 수필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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