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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8/05/14  김영호
경순대왕 춘계능향대제(敬順大王 春季陵享大祭)
경순대왕 승하 1030주년, 신라기원 2065년, 서기2008년

경순대왕 승하 1030주년, 신라기원 2065년, 서기2008년

(사)신라문화보존회 ․  신라김씨연함대종원 ․  언양김씨(彦陽金氏)주관

경순대왕릉 문화재 사적 제244호


  신록이 찬란한 2008년 5월4일(음3월29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량포리 성거산 화장용계좌(花藏龍癸坐)에서는 제30회 경순대왕 춘계능향대제가 거행되었다.

 

 


  (사)신라문화보존회, 신라김씨 연합대종원, 언양김씨가 주관한 이번 대제는 언양김씨 측에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비롯한 모든 헌집을 분정 받아 500여명의 연합문중이 함께하여 정오12시부터 경순대왕의 큰 업적을 기리며 거행되었다.

 


  이날 대제에 앞서 김수길(金秀吉) 대제위원장은 "최선의 숭조(崇祖)는 우리 종친들간의 돈목(敦睦)에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나간 10여 년 동안은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화합하고 합심(合心)하지 못한 채 숭조의 허울만을 쓰고 제향(祭享)을 모셔 왔습니다.

다행히 금년부터는 단합된 모습으로 제향을 모시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화합된 모습으로 합심하여 드리는 이 제향을 경순대왕께서도 흡족하게 생각하시고 기꺼이 열납(悅納)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올해로 대왕께서 승하(昇遐)하신지 103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일천만 후손들이 대제(大祭)를 받들기 시작한지 30년째가 되는 의미 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대왕의 후손들인 우리가 장구한 세월동안 여러 관종(貫宗)으로 분관(分貫)되어 한 혈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남인 것처럼 살아오다가 대왕을 기리는 향사(享祀)를 가지면서 한 혈손(血孫)임을 새삼 깨닫게 되고 끈끈한 감정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라김씨(新羅金氏)는 알(閼)자 지(智)자 대보공(大輔公)을 비조(鼻祖)로하여 대왕에 이르기까지 한 핏줄로 면면이 이어져 내려와습니다.

본관(本貫)제도가 생겨서 각기 다른 본관을 가지게 되었고 더러는 사성(賜姓)을 받아 안동 권(權) 수성 최(崔) 광산 이(李)씨 등으로 바뀌기도 하였으나 우리는 신라김씨 한 혈족으로 하나입니다.


   대왕께서는 비록 천년사직이 끝나는 불운(不運)을 감내(堪耐)하신 왕이셨지만 왕권(王權)보다는 백성의 권리를, 제왕(帝王)의 자리보다는 백성의 안위(安危)를 생각하신 덕(德)과 인(仁)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셨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신라의 국운(國運)은 박(朴)씨 왕이신 55대 경애왕(景哀王)때 이미 기울어 망국의 운명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왕께서는 중신들과 불철주야 경국의 길을 막으려 애쓰셨으나 이루지 못한 한(恨)을 안고 시호이신 경순(敬順)처럼 하늘의 뜻에 거스름 없이 순리에 따라 백성들을 보살피신 성군(聖君)이셨습니다.

제왕의 자리보다 백성을 안녕을 위하여 고려에 손국(遜國)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백성을 구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대왕의 결단과 음덕으로 오늘날 우리 신라김씨는 천만을 헤아리는 대성(大姓)으로 번성하였습니다.


  이같은 대왕의 숭고한 뜻은 동서고금을 통해 찾아볼수 없는 특별한 사례로 위인으로 추앙받기에 충분하여 조선왕조에서 정종(定宗), 태종(太宗), 선조(宣祖), 효종(孝宗), 숙종(肅宗), 영조(英祖), 정조(定祖), 순조(純祖), 헌종(憲宗), 철종(哲宗) 등 10왕으로부터 거듭하여 경순대왕의 후손에게는 군역을 면제시키고 서자라도 천한 일에 동원시키지 말며 면천(免賤)하여 주라는 전교(傳敎)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경순대왕은 신라 제46대(신라김씨31대) 문성(文聖)대왕의 6세손으로 이찬 효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계아태후이십니다.

경애왕 3년(서기927년) 11월에 신라 제56대 대왕으로 즉위하셨으며 신라김씨로는 38대(代) 대왕이십니다.

즉위 8년만인 서기935년 12월 화백(和白)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한 후 백성들의 무사안녕을 위하여 고려 태조에게 대왕 스스로 양위(讓位)하셨으며 그로부터 43년후인 고려 경종3년 서기 978년 무인 4월4일 향수 82세로 승하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왕님의 영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잔을 올리며 고귀한 유지를 받들고 후손들에게 숭고한 대왕의 정신을 가르쳐 긍지를 가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화목단결하여 대왕의 유덕선양(遺德宣揚)에 진력할 것을 다짐합시다.

대제에 참예하신 내외귀빈 여러분과 첨종(僉宗)께 깊이 감사드리며 대제를 위하여 수고하신 임직원께도 감사드립니다." 라는 대제사를 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수길 대제위원장은 연천군에서 대제의 편의를 위하여 경순왕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들어 릉맥을 훼손하였다면 재 복구가 필요하고 , 올해부터는 능(陵) 아래에서 집례를 할 것임을 설명하였고, 나주김씨에서 상석을 기증하게 되었다며 감사를 표하였다.

 


  이날 대제는 초헌관 김세영(金世寧), 아헌관 김석종(金錫棕), 종헌관 김병수(金昞洙), 대축관 김필우(金弼祐), 도집례 김재희(金在熙), 전사관 김우영(金佑英), 알자 김건재(金健哉), 찬자 김생기(金生基), 찬자 김성실(金成實), 봉향 김상철(金相喆), 봉로 김희근(金熙根), 사존 김모영(金模寧) 등에게 헌집분정되어 집례하였다.

 

 경순대왕은 고려 경종3년(서기978년) 음력4월4일 승하하자, 이곳 연천군에 능을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 실전(失傳)되었던 것을 조선조 영조3년(서기1727년)에 김굉(金硡)이 「경순대왕장지(敬順大王藏地)」라는 6자가 조각된 지석(誌石)을 발견된 이후 나라에서 관리하였으며, 서기 1975년 문화재 사적 제244호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언론사 방방곡곡 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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