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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6/26  관리계정
천토(天土) 백도곡 도예(陶藝)
지난 2004 세계도자기 엑스포에서 ‘분원의 아침’으로 대상을 받았고, 영화 ‘스캔들’에서 조선백자 자문 및 협찬을 하였습니다.

천토(天土) 백도곡 도예(陶藝)

세계도자기 엑스포에서 ‘분원의 아침’으로 대상수상

작품철학, 휴머니즘(Humanism) 인본주의(人本主義) 선언

 

김지영 발행인과 천토(天土) 백도곡 도예가는 방방곡곡 본사에서 천토의 도예 세계에 대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김지영 발행인

천토 선생님 저희 방방곡곡을 방문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천토 도예가

오랜만 입니다.

지난 2009년 6월 17일 서울 인사동 동인화랑에서 제8회 정호대발전(井戶大鉢展)에 김지영 사장님께서 자리를 빛내주신 것에 대한 답례와 방방곡곡에서 한국과 인천 강화의 맥(脈) 상징하는 쑥맥(脈)막걸리를 개발하였다 하기에 제가 주병(酒甁)과 술잔을 만들어 격려차 왔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감사합니다.

천토의 예술 정신을 담은 주병과 잔을 대하니 하늘과 땅의 깊은 향기가 인천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천토께서는 그간 우리 전통도예의 맥락을 전수하기 위해 무명의 도공으로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길을 걸어 조선백자를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 지난 2004년 세계도자기엑스포 공모전에서 ‘분원의 아침’이란 전통 상차림 도자기를 제작하여 대상까지 받으셨는데 그간 천토자신과 작품의 탄생 과정이 궁금하여 여러모로 질문을 통하여 독자 여러분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천토 도예가 께서는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도자기를 하게 된 동기는 어떠합니까?

 

천토의 경주에서 탄생, 해인사 부근 야로면 학창생활

 

천토 도예가

예, 저는 경주에서 태어나 합천 해인사 부근 야로면에서 학창생활을 보냈습니다.

12~13살 당시 아버지께서는 사진관을 하시면서 사진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성을 보여주셨고 아버지 친구께서 도자기 흙을 구해 주셔서 그 때부터 도자기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천토의 아버지, 천토를 키운 사진 예술가

백도곡이란 이름, 일직 ‘분원의 아침’의 꿈 심어주어

 

김지영 발행인

그려셨군요, 아버지는 지금 생존해계신가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천토께서 도예가의 길로 가게 된 계기가 된 듯 한데 어떠하십니까?

 

천토 비운의 도예가?

 

천토 도예가

네, 제 부친은 78세이시며 지금 경주에서 계십니다. 그런데 중풍이 걸리셔서 몸이 불편하여 맘이 아픕니다.

 

제 아버지는 저에게 백도곡 이란 이름을 지어주셨을 만큼 조선백자에 대한 의지가 있어 30년전에 조선백자의 마지막 도요지인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를 데리고가 저에게 조선 백자의 의미를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세상에 태어 날 때 부터 도예가의 길을 걷게하는 준비를 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폐허가 된 경기도 분원을 방문하여 저에게 분원의 정신을 심어 줄려하셨던 아버지의 뜻이 저도 모를는 사이에 온전이 저에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장남으로 아직 결혼도 못하고 도예가의 길로만 정전하는 것이, 한편으로 아버지께서 마음아파 하시는 부분이 있어 제자신이 비운의 도예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천토, 스승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

 

김지영 발행인

그럼 실질적으로 도예가의 길이 시작된 것은 언제 부터인가요?

또한 그간 배움의 과정과 함께 했던 선배 도예가이자 스승님에 대하여 말씀해주십시오.

 

천토 도예가

제가 17세 정도 10대 시절 성주 칠산에 친구 아버지 이정우 선생님 도예원에서 5년간 도예의 기초를 배우며 분청자기, 백자를 배운바 있습니다.

이정우 선생님은 분청과 백자를 전수하여 깊이있게 작품화 하신분으로 저의 첫 스승이십니다. 제가 2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간 이조백자를 구현하기 위하여 경주 계림도요 운영, 경남 양산 신정희 선생님에게 막사발 공부, 산청토를 연구하기 위해서 뚝배기 공장에서 기술 상무로 근무, 공주 계룡산 분청사기 도요지, 하동 막사발 도요지, 강진 청자 도요지, 분원 백자 도요지, 임항택 도요 등과 고 안동호(백자) ․ 지순택(청자) ․ 유근형(청자) 한국도자기 1세대로부터 사사를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80년대초 국내와 일본 도예계에서 한국 청자의 명성을 날린 당시 혜광 유근형(자 유광열) 도예가의 정신과 기술을 이천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그러셨군요, 국내 유명 도예가로부터 도자기에 대한 정통의 공부하였고 그 맥락의 길을 걸어오셨군요.

천토께서 초등학교 때 부친과 함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조선의 마지막 도요지를 처음 방문하였다고 했는데 그 후 분원리와 인연이 어떻게 전개되었나요?

 

천토,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생활

분원리 관요백자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

 

천토 도예가

네, 저는 저희 아버지를 천재적인 예술가라고 봅니다. 사진을 하시는 모습,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그 정신을 배우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조선백자 재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 첫 분원리를 방문 후 여주 학동, 이천 광고1리 이장 집에서 자취를 하며 도자기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후 1998년에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초대전을 가졌고, 그해 11월 12일 분원리 관요백자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 분원천토요를 이전하여 작업을 하였습니다.

천토 꿈에 그리던 조선의 백자 구현

‘분원의 아침’ 조선백자, 세상에서 평가받아 대상수상

영화 ‘스캔들’에서 조선백자 자문 및 협찬

천토, 순수한 실력을 인정받다.

 

김지영 발행인

그럼 천토께서는 꿈에도 그리던 조선의 백자를 구현 하셨나요?

 

천토 도예가

조선의 도자기는 고려의 청자가 발전하여 백자가 되는 것이 필연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왕실을 중심으로 백자를 사용하게 되었고 유학사상으로 사대부들은 도자기에서도 의연중에 조선 내부의 진리 발견, 우리의 재발견을 하고자 한국적인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고 봅니다.

그러한 당시 사상은 화려한 모습의 중국 도자기를 배척하고 간결하면서 기품이 있는 순백자를 원하게 되어 우리민족의 상징인 질박, 검소, 결백함의 가치관이 내포된 백자를 선호하여 일반 도예공과 관요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선의 백자는 조선 사대부의 청초하고 간결함, 유려한 형태의 기품, 다양한 형태와 상징적 의미를 갖는 매화, 소나무, 학, 용, 모란, 난초 문양, 여백의 미와 간결한 표현 양식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 마주 대하 듯 한 느낌을 주는 것이 조선백자의 참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그간 저도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의 전통의 맥을 잊기위해 앞서 말씀드렸듯이 반평생을 도예공으로 일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4 세계도자기 엑스포에서 ‘분원의 아침’으로 대상을 받았고, 영화 ‘스캔들’에서 조선백자 자문 및 협찬을 하였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천토 도예가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조선의 마지막 관요에서 수장을 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국사에서 배운 이론이지만 조선 초기에는 호조(戶曹)에서 전국의 도기소, 자기소에서 토산공물로 상공했으며, 15세기 후반 경기도 지금의 광주시에 사옹원(司饔院) 분원을 설치하여 각 지방에서 상공되는 도자기의 품질관리 수송 등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원활한 수급을 목적으로 국가가 직접 운영과 생산 관리하기 위해 한양에 가까운 곳 분원리에 두었습니다.

 

분원에는 380명의 사기장이 분업화된 제작과정이 있었고, ‘육전조례 六典條例’에 의하면 분원에서 1년 동안 만들어진 사기가 1만 3,720여 개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원관요는 관영수공업 체제가 민영화되는 1883년까지 조선백자의 대표적인 제작지였다고 배웠습니다.

 

천토께서는 반백년간의 닦은 결실을 이미 말씀하신 대로 2004년 세계도자기 엑스포 제1회 토야테이블웨어 공모전에서 ‘’분원의 아침’ 이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한 성과로 분원백자 제현의 꿈을 실현하였습니다.

 

대학에서 정식적으로 도예를 배운바도 없는 도예가로 학맥, 인맥도 없이 전국에서 출품한 막강한 도예가의 작품을 앞질러 대상을 수여 했다는 것은 대단한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심사 위원중 궁중요리가이며 대장금의 자문을 맞은 한봉려 이대교수 등 국내 유명대학 도예교수가 심사하였는데 천토의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온전한 실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천토의 도예는 조상의 얼이 서려있는 분원의 아침 기운이 땅의 흙으로 스며들어 현시대 다시 하늘이 내린 흙으로 탄생되어 천토 도예가의 손과 영혼을 빌어서 승화시킨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천토 도예가

김 대표님 너무 과찬이십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채칙으로 알아 듣겠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천토의 ‘분원의 아침’ 작품을 대하면 신비한 기운이 스며 나오는 듣합니다.

2천만명 수도권의 젖줄인 한강,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아침의 신선함을 담은 도자기로 아내가 정성들여 요리한 음식을 아침상에서 맞이한다면, 한국의 남편과 자식을 사랑하는 여인의 부동심(不動心)을 갖게하여 세상을 영위하는 행복의 발원이 될 듯한데 ‘분원의 아침’이란 위대한 작품이 나오기 까지의 경과라 할까 숨어있는 이야기가 있는가요?

 

천토 도예가

조선백자를 현재에 구현하는 것은 한순간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분원의 아침’은 조선시대의 서민들의 애환, 사대부들의 선비정신, 궁궐에서는 정통성과 품격 한국 자연의 미, 수백년 내려오던 실용성과 조상, 윗 사람, 손님, 가족에 대한 높임의 정신이 함축되었기 때문에 탄생되었다고 봅니다.

 

‘분원의 아침’ 전국민에게 보급

일반 가정에 조선백자가 생활자기로 사용되기를

가족의 품격있는 식사, 국력의 원천

 

김지영 발행인

천토께서는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천토 도예가

어린시절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선의 마지막 도요지 복원과 조선백자 구현, 이것은 ‘분원의 아침’이란 대상 수상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며 분원의 아침을 전국민에게 보급하는 일은 또다른 도전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영 발행인

그럼 지금부터 천토의 또 다른 도전, ‘분원의 아침’ 도자기 셋트를 전국민에게 보급해 나가기 위해 연구해 봅시다.

큰 일을 하기전에 먼저 천토의 도예관이 무엇인가 이 자리에서 정립해 봅시다.

 

천토 도예가

저의 도예관은 전통도예 정신의 뿌리를 바탕으로 그것을 이 시대에 다시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시대의 진정한 그릇, 한국의 주체성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저의 도예관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요?

 

천토의 작품관(철학)

천토, 휴머니즘(Humanism) 인본주의(人本主義)

김지영 발행인

예, 천토의 뜻을 잘알았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서 천토 도예관의 명칭을 지어봅시다.

천토의 ‘분원의 아침’, 개개인 자신과 인류를 존중하는 그릇, 천토‘휴머니즘’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김흥수화백은 하모니즘으로 자신의 미술세계를 선언했습니다.

 

이제 천토께서는 자신의 도예 세계를 천토, 휴머니즘(Humanism) 즉 천토,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이 자리에서 함께 선언할 것을 제안합니다.

 

천토 도예가

예, 감사합니다.

김지영 발행인의 말씀대로 휴머니즘(Humanism)을 제 도예관으로 정하며 이 자리에서 그 선언을 합니다.

 

휴머니즘, 말 그대로 인본주의를 토대로 개개인을 존중하며 나라와 사회 그리고 가정의 힘을 만들어 다시 그 힘이 사람을 존중하는 데로 돌아가게 하는 정신의 모체인 그릇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예, 천토 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러한 정신이라면 ‘분원의 아침’ 그릇으로 한국의 가정에 아침을 밝히는 그릇셋트로 보급하는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명학에서의 지행합일(知行合一), 실학에서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뜻을 현대적 입장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천토 도예가

잘았습니다.

앞으로 휴머니즘이 담긴 그릇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천토(天土) 백도곡은

1976 대한민국 전통조선백자 연구

1987 천토요(天土窯) 설립

1988 경주 계림요 운영

1994 제1회 개인전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2회 개인전 인사동 동광갤러리 기획초대전

1995 제3회 개인전 인사동 동광갤러리 기획초대전

1996 제4회 개인전 인사동 통인화랑

1997 天土도예학원 운영(경기도 부천시)

제23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장려상

1998 제5회 개인전 분원리 관요백자 재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초대전

11월 12일 분원리 관요백자 복원추진위원회 현판식

2000 제6회 개인전 서울 인사동 공화랑

2002 한국문화재단 초대전 분원관요백자(서울특별시 후원)

2003 영화‘스캔들’ 조선시대 백자 자문 및 협찬

제7회 개인전 인사동 경인미술관

2004 세계도자기 엑스포 제1회 토야테이블웨어공모전 대상 수상

작품 ‘분원의 아침’

2006 분원천토요 개칭 이전(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2009 분원천토요 이전(경기도 고양시 내곡동)

제8회 개인전 인사동 통인화랑 “정호대발전”의 도예가로서 길을 걸었다.

 

김지영 발행인

천토 도예가의 다음 개인전은 ‘분원의 아침’이란 주제로 개최했야 겠습니다.

 

천토 도예가

예, 이제부터 天土, 人本主義 즉 휴머니즘(Humanism)의 정신으로 ‘분원의 아침’을 표현하겠습니다.

오늘 너무 뜻깊은 시간을 만들어 주신 김지영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도예세계를 정립시키는데 오늘 확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지영 발행인

늦은 시간까지 성실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천토의 ‘분원의 아침’이란 도자기가 한국의 아침상을 밝혀 행복한 가정이 더욱 승화되어 각자 큰 덕을 쌓으며 스스로 강해져 진정한 한국의 아침이 밝혀지기를 바라겠습니다.

BBGG 인터뷰/ 방방곡곡 서용선 ․ 오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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