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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2/23  김지영
김성관(金成冠),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어매곡 마을이야기...

 

전남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어매곡 마을, 언양김씨 500년 집성촌

        매화낙지형국, 흰 학이 알을 품고있는 백학포란형(난낭) 풍수

        김공응회(金公應會), 충효(忠孝)충순(忠純) 선비정신 서려있어...

 

전남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어매곡 마을은 깊숙하고 고준한 곳, 매곡천 청간수가 서쪽에서 흘러들어 고비산, 황매산, 요동산을 감싸고 흐르는 유경유곡(流景幽谷)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매화꽃 잎이 땅에 흩어져 그 향기를 더한다는 매화낙지 형국, 흰 학(鶴)이(두루미) 알을 품고 있는 지형(백학포란 형국)으로 매화가 땅에 떨어져 그 꽃의 수술(낙악)에 해당하는 곳이다.

 

어매곡 마을 주산(主山)은 매화를 희롱하는 나비의(부귀재천) 날개처럼 절개형으로 우백호, 좌청룡을 이루고, 요동산에서 내려오는 지조, 절개 의절의 기운은 500년 여년 언양김씨 집성촌을 이어오게 하였다.

 

 

어매곡 마을에는 언양김씨(청계)인의 수많은 유적과 선조님들의 발자취가 남아있고, 선조님들은 산과 천(川)이 둘러 경치가 아름다운, 하늘(용, 등천, 상천, 어천)로 오르는 기운을 받은 매화 낙지 형맥에 안장되어있다. 이러한 풍수지를 이루어진 곳은 경남 울진군 농소읍 농소 1동과 함께 전국에서 두 곳 뿐이란다.

 

이 마을은 일제 강점기(1918년) 때, 일본의 수요에 따라 국민이 어떤 물자(쌀)을 의무적으로 정부받치는 공출(供出)의 피해가 없던 마을이다.

 

또한 한국전쟁, 6.25(1950년)사변에도 마을이 전소되거나 인명피해가 없는 마을로 지형학적으로 보아 문외출가세부란 마을형이다.

 

조선16대 인조 임금은 이 곳이 거주하신 청계(淸溪) 김공응회(金公應會 본관 언양)) 창의사께 흑매획
청계(淸溪) 김공응회(金公應會 본관 언양))
1폭(병풍)을 하사 하셨으며, 임진년(1592년)에 청계장군의 처남 충장공 김공덕령(광산 김씨) 장군과 의병을 모집하여 담양 추월산 전투와 경상도까지 진군하셨으며, 그 후 인조의 부름을 받아 어전에서 어매실이라는 사명을 받아 어매(또는 매곡) 이라 불려 왔다.

 

어매곡 마을은 1941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외추리 외추동, 양촌(노천동), 어매곡 3촌을 이루고 있다.

현재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어매곡) 매곡 마을, 노령산맥(고비산, 황매산, 요동산) 매화낙지 형국 자락아래 매화꽃이 요동산 기슭에 피고 아름답고 아담하게 자리잡는 어매곡(매실)에는 청계 김공응회(金公應會(창의사)) 후손들이 500여년 동안 살아온 집성촌 마을로 언양김씨 청계공파 후손들이 오늘에 이루고 있다.

 

어매곡 마을은 언양김씨 21세 청계 김공응회께서 태어난 마을이다. 공(公)은 을유년에 진사시에 합격 귀후서별좌(歸厚署別坐)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임진년에 외적이 쳐들어오자 여러 마을에서 듣고 와해되니 공이 어매곡(御梅谷)에서 분기하여 말하기를 “나라 종사(宗社)가 패허되고 군부가 파천하니 신자(臣子)된 도리로 신명(身命)을 받쳐야 할 것이다”하고 처남 김공덕령에게 의거하기를 권했다. 김공덕령(金公德齡)은 용맹스런 장군이었다.

 

드디어 의병을 일으켜 경상도까지 진군하여 왜적을 막는데, 조정이  강화하여 해산을 권유하니 아직 잔류가있어 더 싸울것을 청하나 불허하였다. 이윽고 김덕령 장군이 역적으로 누명을 쓰고 국문을 당하여 화가 공에게도 미쳐, 김공덕령의 번역한 사실을 공에게 물으니, 공은 김공덕령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절대로 딴마음이 없음을 극언하였다.

 

공이 고문을 받아도 언어와 기계가 태연자약하니 위관 김응남이 공에게 묻기를 “너는 어찌 고통스러운 면이 없느냐?” 하자 공이 말하길 “궁궐과는 지척이니 어찌 미천한 신하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게끔 할 수있으랴” 하였다. 위관은 공의 충직함을 임금께 진언하여 특별히 사면하였다.

 

공은 정유년 9월 16일 난리 중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도중 적과 대응하다 함께 운명하여 동부동매산 건좌손향(현 어매곡 진등)에 장사하였다.

 

현재 담양읍 학동마을 입구에 효자정문을 세우고 어진 선비들이 구산에 사당을 세워 제사하였다.

公의 성품은 충순(忠純)하고 기상은 괴위(魁偉)하며 선(善)을 즐기고 의리를 좋아하는 성품으로 충과 효를 겸비한 선비정신이 오늘날 우리 후손들의 귀감이 되고있다.
'청계재'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어매곡

 

한국 의병 인물사에 조선중기의 의병활동 기록을 보면, “청계 김공응회는 본관이 언양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 김공덕령 장군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각처에서 왜군과 격전을 전개, 전공을 세웠다. 김공덕령이 모함을 받았을 때 그를 극력 변호했다.

 

그 후 왜군과 분전 끝에 전사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바와 같이 의병활동은 충절이요, 나라에서 벼슬을 내려도 홀로계신 어머님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사양했던 점과 의병 활동중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다니다가 적을 만나 적이 모친을 해하려하자 공이 몸으로 감싸고 함께 운명을 하였다. 라고 하는 기록을 보아, 후자는 효도에 죽으니 장하고 휼륭하지 아니한가! 하여, 공의 5대손 언휴(彦休)가 언양김씨충열록(彦陽金氏忠列錄)이라 명명하고 문충공(文忠公) 민진원이 서문을 쓰고 수은 강항이 공의 정문기(旌門記)를 짓고, 언휴의 손자 노윤(魯潤)이 제서(諸書)를 손수써서 청풍 김종후에게 보여 공의 행장(行狀)을 짓게 되었다.

 

언양김씨 34世, 평해 김성관(平海 金成冠)
오늘날 경로효친과 조상숭배 정신이 희박해져 청소년들에게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담양향교와 담양군청의 후원을 받아 당시 전사했던 담양 추월산 입구에 순절비(殉節碑)를 세워 청소년들의 산교육장이 되고있다.

 

어매곡 마을의 풍수와 아름다운 풍광이 역사적인 인물들을 탄생시켰고, 앞으로 담양군과 한국을 빛내는 인물들이 배출되길 기대한다.

 

이글은 언양김씨 34世  김성관의 증조부 유언과  彦陽人의 脈(언양김씨 대종회 著)을 참고하였다.

 

방방곡곡 김지영 기자 www.bbggnews.com

『방방곡곡 1천만 독자 방문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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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淸溪) 김공응회(金公應會 본관 언양))
청계(淸溪) 김공응회(金公應會 본관 언양))
언양김씨 34世 김성관(平海 金成冠)
언양김씨 34世 김성관(平海 金成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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