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손 · 김통정 강화인의 호국정신
강화고려궁 복원으로 역사적 중심 바로잡아야
고려는 1219년 김취려 강동성 거란격퇴 후 김취려 장군의 위엄과 지혜로운 외교로 대몽관계를 유지하다 몽골은 1225년 사신 저고여가 압록강 연안에서 피살됨을 빌미로 1231년 몽골군의 제1차 침입을 하였다. 이에 고려정부는 1232년 강화도 천도를 단행하며 강화고려궁을 비롯한 내성과 외성을 축조하며 1270년 원종 11년 개경으로 환도까지 39년 간 강도시대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삼별초(좌별초/우별초/신의군)는 고려 원종 정부의 원나라와 불평등한 강화 후 개경환도에 반대하고, 독자적인 항쟁을 결의하며 배중손 김통정 노영희 등 삼별초 지도부는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여 1270년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항쟁하였다.
삼별초는 1270년 6월 3일 강화고려궁과 가까운 갑곶나루에서 선원면 신정리 더리미해안에서 배중손(길상면 출신) · 김통정(교동면 출신) 등 강화군민과 삼별초 군 1만여 명이 1,000여 척의 배로 항전을 결의하며 진도로 내려갔다.
삼별초의 근거지인 진도 용장성은 삼별초가 입도하기 전부터 이미 조성되어 있었고 명량해협을 굽어보는 천혜의 요충지로 넓이가 약 258만평, 성곽의 길이는 총 13km에 달하며 성내에는 강화고려궁과 같이 축대를 쌓아 강화고려궁에 버금가는 고려궁을 건립하여 위상을 갖추었다.
삼별초는 세곡을 확보해 군비를 마련하고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를 점령하며 자주정부의 형태를 가추며 일본 막부와 외교접촉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271년 여·몽연합군의 공세로 진도가 함락되자 김통정의 지휘 아래 병력을 재정비하고 제주도로 이동하여 항전의 불꽃을 피웠다.
김통정(강화군 교동면 출신)은 삼별초를 이끌고 1271년에 제주도(애월읍 항파두리)에 진입하여 2년 간 지속적으로 백성 다수가 가담한 항쟁을 하였으나 1273년 고려 몽골 연합군의 대규모 공격으로 김통정은 부하 70여 명을 이끌고 한라산에 들어가 자결하여 고려의 몽골 저항의 마지막 불꽃이 되었다.
1219 김취려 강동성 거란격퇴
1225 저고여, 압록강 연안에서 피살
1231 살례탑의 몽골군 제1차 침입
1232 강화도 천도, 김취려 문하시중 고려궁 축조, 몽골 제2차 침입
1236 고려팔만대장경 조판 착수
1257 몽골 제2차 침입
1259 강화도 내성 외성 철거
1270 원종11년 개경환도
1270 배중손 등 삼별초 진도로 항몽(궁궐과 용장성 12.75km 축조)
5.23 개경 환도 결정
5.29 삼별초 탄압
6.1 배중손 노영희 등 삼별초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항쟁
6.3 강화군민과 삼별초 군 1만여 명이 1,000여 척의 배로 진도로 내려감
9.7 개경정부 김방겸과 몽골 원수 아해가 군사 1천 명으로 진도 용장성을 함락, 김통정 등 삼별초 제주도로 후퇴
2025년 강화고려궁 복원 계획이 없다. 역대 대통령도 강화고려궁 복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 강화고려궁 복원, 이재명 정부와 인천광역시ㆍ강화군의 역사적 사명을 촉구한다.
방방곡곡 김지영 기자
강화고려궁복원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