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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3/21  방방곡곡
봄맞은 고려의 수도 江華, 숨어있던 고려장군 찾아서
3월 20일 11시,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 장군(將軍) 춘향대제(春享大祭)

3월 20일 11시, 위열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 장군(將軍) 춘향대제(春享大祭)

김취려 장군 서거 777주년, 김취려묘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

김취려의 인간성 의용(義勇)과 관후(寬厚) 우리가 배울점

‘김취려 묘지명’, 학생들 교육자료로 활용, 강화나들길중 ‘능묘가는 길’ 출발 장소로

인천광역시 택견연맹 고려시대 택견시현

 

 

봄 바람이 솔솔 익어가는 고려의 수도 江華, 현 양도면 하일리 진강산 서쪽 대곡동 산세 수려한 터에 위치한 고려 명장 김취려 장군묘(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5호)에서 3월 20일 오전 11시, ‘위열공 김취려 장군 춘향대제’가 언양김씨 대종회가 주관하고 강화군 ․ 강화문화원 ․ 인천광역시택견연맹(고려시대 택견시연)의 후원으로 거행된다.

 

이번 춘향대제는 강화도의 역사적 가치가 높아지는 시기, 인천광역시의 ‘고려역사문화재단’ 출범, ‘고려시대 능묘가는 길 나들길 지정’, ‘김취려묘 문화재자료 제25호지정’ 과 함께 문하시중(門下侍中 현 국무총리)김취려 장군의 서거 777주년을 추모하는 행사이다.

 

려후기 김취려(金就礪)장군(명종2~고종21, 1172~1234), 본관은 언양(彦陽)이며 언양현 사람이다. 아버지는 금오위대장군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주씨로 수검교장군행랑장의 딸이다.

 

            

 

김취려는 1186년 군대의 장수에 뽑혔고 얼마안되어 태자부견룡 ‧ 견룡행수 ‧ 어견룡행수의 직책을 맞으며 변방과 군내를 호위하며 대장군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서북면 지병마사가되었다.

 

1216년 가을 (고종3) 거란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 ‧ 삭주 ‧ 영주 등지로 침입하여 식량과 부녀자를 희롱하고 무고한 백성을 학살하자 김취려는 후군 병마사 자격으로 장군 기존정과 함께 앞장서서 적군의 포위를 돌파하여 분투하니, 그에 힘입은 군사들이 용기 백배하여 적을 무찔러 거란군 포로가 2400여명이나 되었다 한다. 이 전투에서 맏 아들이 전사하는 불운도 격었다.

 

또한 1217년 거란군 5천여명이 침략하자 전군병마사로서 적을 무찔렀고 다시 거란과 여진이 연합하여 침입하자 예주에서 교전하였으나 병으로 돌아 왔으며 1218년 (고종5)거란이 또 다시 침입하여 오므로 병마사가 되어 거란을 강동성(江東城)으로 쫓아냈다.

 

또한 몽고군과 동진국과 힘을 합쳐 강동성을 함락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업적으로 ‘증시 위열공수태사개부의동삼사 문하시랑평장사 상장군’ (정2품이고 정원은 1명)에 제수되었다.

 

1234년 (고종21) 강화에서 서거하니 고종이 친히 빈소에 나와 조의를 표하고 3일간 정사를 중지시켰다.

 

 

김취려는 고종 6년 1219년 정월에 몽고와의 연합작전으로 강동성을 함락시키면서 거란군을 패배시켰던 당시 서북면병마사였던 그가 부원 사(副元師)급의 지위로 참전한 이 전쟁이 고려와 몽고와의 첫 번째 접촉이자 이후 몽고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때 나이 47세였던 그가 여러 관직을 거처 최고 지위인 문하시중(門下侍中)에까지 올라갔다.

 

김취려의 역사적인 평가는 고려사, 김취려 묘지명,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이제현의 김공행군기,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신동국여지승람, 구조방일, 세종실록지리지, 언양현읍지, 조선왕조신록, 세종실록, 문종실록, 세조실록, 성종실록, 국조방목, 강제총화 동국병감, 동사강목, 이제현의 김공행군기 등의 사서에 기록되어있다.

 

김취려 장군은 거란침략을 물리친 충의의 용장으로 몽고와의 관계에서 대외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외교방식에 평화체계를 구축한 그의 결정적인 역할과 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서도 크게 평가되었다.

 

김취려의 인간적인 측면은 충직 그리고 의용(義勇)과 관후(寬厚)였다. 외모와 체격이 출중하였고 유달리 긴 수염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려사에는 김취려의 키가 6척 5촌(195cm)이나 되는 체격에 수염이 길어 배를 지났으므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반드시 여종 2명에게 수염을 좌우로 갈라들게 한 다음 띠를 매곤 하였다. 합진(몽고장수)이 김취려의 용모가 뛰어나므로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라고 기록되었다.

 

동문선에는 김취려는 제비턱 같은 기이한 모습이요, 이무기 수염처럼 특이한 풍체였다. 활을 쏘는 재주는 묘한 지경에 달하여 벽력의 소리와 같고, 전술은 귀신을 통하여 번개같이 빨랐다.

 

김취려에 대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공직자로서 책임감이 투철하고, 전투에 임하여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군인의 표본이었다는 점이다.

 

 

그 예로 이제현의 김공행군기에 묘사, 고종3년(1216) 가을 거란이 처음 침입하였을 때 3군의 후군사(後軍使)가 되어 전쟁에서 “홀로 아군의 선봉이되어” 적을 격파 하였다. 이듬해 1217년 1월 금오위 상장군에 임명되어 5군의 후군을 이끌고 안주 부근에 주둔하였는데, 行營이 패하여 도망하자 “공이 홀로 마주 싸워 창과 화살이 몸을 뚫는 것조차 알지 못하였고” 이 때 그는 거의 전사할 뻔 하였다고 한다 등이 연구(한국중세사학회) 되었다.

 

김취려 장군의 심도있는 연구를 위해,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 학술연구 발표회’ 지난 2월 11일 울산 롯데호텔, 2월 17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각각 5시간에 걸처 열렸다.

 

이행사는 ‘13세기 거란 유종의 고려 침략과 대응,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 학술연구 발표회’로서 ‘한국중세사학회’가 주최하고 ‘울주문화원’이 주관하여 ‘언양김씨대종회’의 후원으로 국내 사학과가 개설된 15개 대학교에서 16명의 역사학자가 참여한 한국중세사학회 제84회 연구발표회이기도 하였다.

 

이번 김취려 장군 777주년 춘향대제를 앞두고 강화군(안덕수 강화군수)은 역사의 고장 강화에 문화재가 하나 더 등록되었고, 문하시중(門下侍中)직(정1품)을 지낸 위인이 강화에 안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찾아냈다는 가치가 크다며 묘에서 출토된 묘지석(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학생들에게 휼륭한 교육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일웅 언양김씨대종회장은 “위열공께서 1234년에 서거하신지 무려 777년 만에 비로소 문화재로 등재됨과 춘향대제를 강화군수님이 함께한 가운데 드리게 되어 후손들로서 실로 감개무량하며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일이라며 그 분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됨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영웅 김취려’ 저자 황천우 작가는 “김취려 장군은 우리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내막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를 능가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조선과 고려라는 시대적 상황과 이순신 장군이 우리 민족이 영원한 숙적으로 간주하는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일구어 낸데 반해, 김취려 장군은 북방의 거란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전투에 임해서는 항상 선봉에 서서 기발한 전술과 계교로 적을 격퇴시킨 지장이었고, 모든 공은 수하 장졸들에게 돌리며 제 몸 이상으로 부하들을 고루 사랑한 덕장이었으며, 심지어 함께 참여한 전투에서 나이 어린 큰 아들을 잃고 아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구국이란 대의 앞에 스스로를 통제했던 올곧은 인물이었다.” 라며 앞으로 김취려 장군을 사극(史劇)으로 추진하여 전국민이 TV에서 만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하였다.

 

한편 이번 춘향대제 식전행사 고려시대 택견 시연은 인천광역시 택견연맹(김지영 회장) 시연단의 후원으로 김취려장군의 용맹과 무예정신을 상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택견은 우리나라 전통무술의 하나로, 유연한 동작으로 손과 발을 순간적으로 우쭉거려 생기는 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자기 몸을 방어하는 상생공영의 철학을 바탕으로 행하는 무술이다.

 

고구려시대 고분벽화에 택견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와서 무술로서 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무인들 사이에서 무예로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중화한 경기로 퍼져서 무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널리 행하게 되었다.

 

현재 사)대한 택견은 전국적인 조직으로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이며 전국체전에서 시범경기로 체택되었고, 인천광역시 택견연맹은 인천광역시체육회 정가맹단체로 2009년 인천도시축전시 제6회 대통령기 전국 택견대회를 개최한바있다.

 

이번 위열공 김취려 장군 춘향대제를 주관하는 언양김씨(彦陽金氏)는 신라 경순왕과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가 결혼하여 탄생된 김선(金鐥)을 시조로 언양(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이 관향이다. 또한 김취려는 김선으로 부터 8세손이다.

 

김취려 장군묘 찾아가는 길강화대교-강화읍-찬우물 3거리, 마니산 방향-인산저수지-마니산 방향 2km 하우고개/ 초지대교-온수리- 3.5km 양도면 양도면사무소-300m 하우고개 (언양김공취려장군묘소 입구-산길로 250m)정상 부근이다.

 

그곳은 김취려 장군묘로부터 진강산 남단, 남한 유일의 고려시대 묘가 밸트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강화군에서는 ‘강화나들길’중 ‘능묘가는길’이란 관광 코스를 개발하여 고려 고종 홍릉을 비롯하여 김취려 장군묘, 정제두묘, 가릉, 석릉, 곤릉, 석릉, 허유전묘, 이규보묘를 관광벨트로 만들어 놓았다.

 

언양김씨 대종회/방방곡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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