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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6/29  황청호
설악산 백담사 - 영시암 - 오세암 - 봉정암 산행수행 통일한국 의지 담아...

깨달음의 수행처 봉정암을 찾아서

우리민족의 통일은 봉정암이 주는 깨달음에서 찾아야만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그리며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마음의 고향이 있다. 그곳이 더욱이 아름다운 마음의 미향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마음이 자연이 되어 우리들의 모든 마음속에서 맑은 물소리가 들리고, 한 없이 깨끗한 파란하늘이 들어나며, 오색찬란한 푸른 싱그러움이 들어나 사람들의 마음이 신선해지는 곳이면 더욱 좋다. 더욱이 사랑하는 자녀, 젊은이, 늙은이, 연인들과 서로 서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을 수 있는 곳이면 더욱 더 좋다. 과연 이런 곳이 있을까? 있다. 그곳은 깨달음의 수행길로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 행선을 하면서 님의 침묵이라는 시상을 빚어내며 독립을 간절히 열망했던 바로 그곳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산행 길이다.

 

 

백담사는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이르는 길에 물 깊은 담소가 백군 데가 넘는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담사는 설악산의 물줄기들이 한곳으로 흘러들어 모인다는 백담계곡, 그 아늑한 터전 위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1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절을 지어 미타상 3위를 조성, 봉안하고 이름을 한계사라고 지었다. 이 한계사는 자장이 창건한지 50여년만인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실화로 불타 없어졌지만 곧 다시 재건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백담사는 1919년 4월에 당시의 주지인공선사가 복구한 것이다. 이 백담사는 원래 산수가 빼어나고 수도처로서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역사속의 인물보다 만해(卍海) 한용운의 주석처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만해 스님은 이곳에서 「님의침묵」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탈고했으며 「조선불교 유신론」이라는 평론집을 펴내기도 하였다.백담사의 현존 건물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山靈閣), 화엄실, 법화실, 요사채 등 만해기념관과 함께 3층 석탑도 1기가 있다. 백담사는 여러 차례 절 이름이 바뀌었고 위치도 달라졌기 때문에 그 전모를 다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화엄학이나 천태(天台) 등 교학계통을 연구하는 사찰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곳을 기점으로 하여 오세암, 봉정암 등은 모두 유명한 기도도량이기도 하다. 산행의 깨달음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시작 된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의 산행코스는 2군데가 있다. 하나는 백담사-영시암-수렴동대피소-봉정암으로 가는 길인데 10.6킬로미터로 약 5시간 반이 소요된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동네 뒷산 같은 코스로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 이용하면 좋다. 급경사나 수직암벽이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계단들이 설치되어 있다.

 

 

다른 한군데는 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 코스로 약 10킬로미터에 소요시간 6시간정도다. 이 길은 깔딱고개가 여러 번 있어 산행에 자신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이 좋다. 두 길을 모두 걷고 싶다면 상행은 수렴동대피소길로, 하행은 오세암 길로 내려오는 것이 무난하다.

 

나는 두 코스를 모두 깨달음의 수행길로 걷기로 하였다. 먼저 오세암코스로 한다. 오세암은 조선의 학자 김시습이 삭발출가한 곳이고, 만해 한용운이 39세 되던 해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오세암에는 동자전이란 특이한 전각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오세암의 원래 이름은 관음암이었다. 조선 인조 때 설정이란 승려가 네살박이 아이와 관음암에 살았다.

 

겨울이 다가오자 겨울 날 식량준비를 위해 장터에 다녀와야 했다. 네살박이를 혼자 두고 시장에 다녀와야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여러 날 먹을 밥을 해두고 무슨 일이 있으면 관음보살을 부르라고 당부해두었다. 부랴부랴 시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큰 눈이 내려 길을 막았다.

 

봄철이 되서야 길이 열렸다. 체념한 설정이 힘없이 암자로 들어서는데 아이가 목탁을 치며 관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순간 관음보살이 내려와 아이가 성불한 소식을 전하고 사라졌다. 설정은 기뻐하며 아이를 안았는데 아이는 안기지 않은 채 바로 승천했다. 그날부터 설정은 성불한 다섯 살 동자가 여기에 있었노라 하며, 암자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산행길은 정말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수없이 많은 봉우리들이 아름다운 산새 소리와 아름답게 어우러져 미적 감각을 들어낸다.

 

나는 오세암을 떠나 봉정암으로 출발한다. 한국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이 있다. 5대 적멸보궁이라 하면 신라선덕여왕 13년 신라승려였던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사리를 봉안한 양산 통도사, 오대산 정암사, 상원사, 영월 법흥사 그리고 설악산 안 해발 1244미터에 위치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곳 적멸보궁인 봉정암을 말한다.

 

자장은 당에서 진신사리를 가지고 온 뒤, 먼저 통도사에 봉안했다. 이어 금강산에 봉안하려고 자리를 찾던 중 오색찬란한 봉황새 한마리가 나타났다. 그 새를 쫓아가니 어느 큰 바위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 곳의 바위들을 보니 부처의 모습과 흡사했고 특히 봉황이 사라진 곳은 부처형상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위였다. 또 그 바위를 중심으로 7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으니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이었다. 자장은 이곳에 불사리 중 뇌사리를 봉안한 5층 사리탑과 암자를 짓고 봉정암(鳳頂庵)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봉정암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를 지어 부른다.

 

 

천불봉정

아! 한발 한발 이름모를 천불의 한발

천불이 봉정의 이름을 외며가는 그 한발 한발

이렇게 외며가는 천불의 한발 속엔

 

천불의 몸과 마음이 계곡의 곡신과 하나 되어 가네.

아! 세상은 천불의 미를 그토록 찬양하고 찬양하나

천불자신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도리어 모두모아 계곡의 곡신 앞에 버리고 버리어서

진정한 대청의 봉정이 되고자 하여 가네.

아! 천불이여. 계곡의 곡신 앞에 던져버린

 

그 버리고 버린 그 한 마음과 몸은 무엇인가

드디어 천불이 저 깊은 계곡의 심연 속에서

봉정 앞에 이르러 머리 숙여 깊이 고 아리니

 

아! 그 한 마음과 몸은 봉정 앞에 끝없이 비워져

들어 난 모든 산야의 아름다움 일세

드디어 천불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비워 버리고 버리어서

비워져 들어 난 천불봉정이 되었네.

 

이렇게 시상에 젖어 시간을 보니 저녁시간이 다 되어간다. 봉정암의 저녁공양시간은 오후 5시 반이다. 산행길의 지친 배가 소식을 알려온다. 나는 암자의 공양을 기대한다. 하지만 공양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봉정암은 기도발이 잘 듣기로 전국에서 소문난 암자다. 그래서 불자들은 생애 한번은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이곳을 꼽는다.

 

그러니 매일 수백 명 씩 불자들이 험한 산길을 타고 이곳으로 오는 것이다. 더구나 입시철을 앞두고 자녀들의 진학을 바라는 부모들이 많이 몰려온다. 불자들은 이곳에서 하루를 머무르며 철야기도, 새벽기도를 한다. 또 이곳은 대청봉으로 가는 주요 등산코스이기도 하다. 주말이니 등산객들도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였으니 공양줄이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양간의 문이 열리자, 줄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식사메뉴는 미역국이었다. 미역국 한 그릇에 밥을 말아 오이무침 두어개를 얹어서 주는 것이었다. 역시 양은 적었다. 식사를 마치고 암자를 천천히 둘러본다.

 

 

듣던 대로 저녁예불시간 봉정암의 법당은 인산인해였다. 들어가지 못한 신도들은 마당에서, 건너편의 종각에서 그리고 법당 안에서 울려나오는 신호에 맞추어 예불을 올린다. 봉정암은 찾아오는 신도들을 위해 대규모 숙사동을 가지고 있다. 하루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한다.

 

인터넷 홈피를 보면 기도를 위해 찾아오는 신도들 이외의 숙박은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방이 남는 경우 1인당 만 원정도 헌금하면 방을 내어준다.

한방에 50명 정도 수용하는데 한명에게 제공되는 면적이 길이 1미터, 폭 30센치미터 정도이다. 이 면적이면 다리를 펴고 잘 수가 없다. 다리를 구부리고 새우잠을 자야한다. 더구나 이동통로가 없으니 사람들이 들고 나갈 때마다 잠이 깨서 숙면을 취할 수 없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철야기도 내지 새벽기도를 위해 오기 때문에 잠을 자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데, 그런 경우라면 푹 잘 수 있지만 등산객들과 묶여버린다면 잠자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고도가 높아 봉정암의 밤은 매우 춥다. 다행히 군불은 뜨겁게 떼워 준다. 온수는 없다 물이 그렇게 시릴 수가 없다. 하산을 위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을 먹는다. 또 미역국이다. 웬걸.. 아침을 먹는 이 들에게 김을 둘둘 말은 주먹밥을 하나씩 나눠준다. 하산 길에 먹으라고...고맙다.

 

봉정암은 기도발이 잘 듣기로 내노라하는 곳이다 그래서 엄청난 시주금이 쌓인다. 그 돈으로 중창불사를 하고 있다. 이 봉정암은 매년 커지고 있다. 봉정암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한 탑이라는데, 전형적인 고려시대 5층 석탑양식이다. 탑은 안정감과 상승감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아름답다. 이탑은 상승감만 강조되어 빈약해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기단부가 없다는 것이다. 바위 전체를 기단부로 생각했는지 바위 면에 연꽃을 새겨놓았지만 빈약함을 감출 수 없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하산길에 나선다. 하산길은 수렴동 대피소 코스로 다시 백담사로 갈 것이다. 아름다운 대자연의 계곡이 또 다시 우리들을 맞이한다. 봉정암으로 올라올 때보다 한결 편하다. 하루 밤을 봉정암에서 보내면서 쉬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수렴동계곡의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나는 봉정암 산행길에 지은 천불봉정의 싯귀를 다시 생각하며 암울한 일제시대 만해 한용운선생께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지어내었던 님의 침묵을 그리며 또 다시 시상을 가다듬어 시를 지어낸다.

 

 

아! 한민족아

한민족아 한민족아

한가지에 나서도

가는 곳을 왜 그리 모르며 서로 싸우기만 하는가

 

수만 민족 있어도 분단 민족은 없다는데

그대들은 정녕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한민족아 한민족아

 

꿈을 깨소 꿈을 깨소 정녕코 꿈을 깨소

우리들은 모두 본시 한뿌리 한민족 씨울의 민족

꿈 깨어 정신 가다듬고 조상님네 통곡소리 들어가며

 

이제는 한뿌리 한민족의 길로 살아 가세나

한민족아 한민족아

아무리 아무리 살아가는 길이 힘들어도

 

우리들은 칡덩굴처럼 살아온 한뿌리 한민족이니

남을 아비어미라 허공에 외는 사대사상은 아니 되네

조상님들 이 보습 보면 모두 모두 통곡바다 이루리

 

한민족아 한민족아

가자구나 가자구나 이제는 정말 바로 가자구나

백두산 소 울음소리로 만들어진 천부의 뜻 새기며

 

홍익세상 이화세계 이뤄가며

한민족 세상 만세에 펼치며 살아 가세나

 

 

나는 이렇게 시상에 젖어가며 백담사로 향한다. 우리시대의 험난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천불봉정처럼 마음 빔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빔으로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야만 한다. 만해는 백담사에 머무는 동안 이러한 마음으로 나라의 독립을 생각하며 님의 침묵을 써내려갔을 것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통일한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깨달음의 수행처 봉정암을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들을 늘 상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독립은 바로 남북통일이 아닐까? 남북통일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인내하며 우리민족의 통일을 이루어나가야만 할 것이다.

 

방방곡곡 황청호 기자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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