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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1/24  황청호
대한민국과 동아시아냉전분단체제의 이론적인 전재역사적인 구조주의와

현실주의로 동아시아냉전분단체제를 극복

 

 

대한민국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新)냉전체제의 국제질서에서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아시아냉전체제의 발단이 바로 대한민국이 위치해 있는 이 한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동아시아냉전체제의 씨앗은 근세조선을 움직였던 사색당쟁의 정파적인 분쟁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사색당쟁에 빠져있던 근세조선은 세계서구열강들이 제국주의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동양으로 몰려오는 대외적인 현실감각이 전혀 없이,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인 야욕에만 젖어 오르지 소모적인 정쟁만을 일삼고 있었던 그런 시대였다.

 

아마도 이러한 소모적인 정쟁의 주요요인들은 조선의 국정운영에 있어서 유학(儒學)을 너무 중하게 여기는 조정 대신들의 대의적인 명분론이 매우 자잘하고, 또한 조선조정은 이러한 명분론적 사유방식을 고착화시키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엄하게 형옥을 집행했는가 하면, 더욱이 가문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문벌정치의 패해가 너무 오래 동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선조정의 정치적인 탐욕과 무능은 조선경제를 무너뜨리고, 드디어 이에 분개한 조선백성들은 동학농민혁명으로 대항한다.

 

전봉준 장군
동학혁명은 1894년 1월 10일 조선조정의 무능과 부패에 항거하고자 전라도 정읍에서
전봉준(全琫準, 1855~1895)이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이 동학혁명에 결사에 나서는 전봉준의 연설을 보면, 얼마나 그때 당시 우리의 조선사회가 부패로 모든 백성들의 삶을 황폐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피땀 흘려 지은 곡식이 우리 손에 들어오지 않고 저 악랄한 지주들이나 관료들의 손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 그런데도 중앙의 대소 신료들은 자기 잇속 채우기에만 모든 정신이 빠져 있습니다. 여기에 조병갑마저 다시 부임해와 어제의 행패를 오늘 또 하고자 합니다. 조선 백성들이여,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들은 영원히 후회할 것입니다. 부디 저 탐관오리들을 물리치고 이 나라를 바로잡는 비장한 대열에 모두 다 함께 앞장섭시다. 자, 날이 밝기 전에 곧바로 고부 관아로 쳐들어갑시다.”

 

전봉준은 이렇게 외치며 동학운동에 임하는 마음의 자세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 동학혁명(東學革命)은 바로 청일전쟁의 불씨를 제공한다. 조선은 과거 임진왜란부터 청일전쟁이 일어나기까지 현실적으로 세계의 변화를 바라보는 현실적인 감각의 눈이 모두 사라지고 오르지 허울 좋은 태평성대만을 추구하다, 급기야는 이처럼 청일전쟁이라는 국난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청일전쟁은 동아시아냉전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드디어 발전한다.

 

동아시아는 이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하여 뒤이어 러일전쟁, 미일태평양전쟁을 치루며 대소(大小)분단체제를 재편한다. 그리고 그 대소(大小)분단체제의 중심은 바로 우리의 한반도가 된다. 이제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냉전체제를 만들어내고, 대소(大小)분단체제의 모든 역사적인 전통성과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데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를 기점으로 생성된 대소(大小)분단체제의 냉전체제는 대분단체제와 소분단체제로 나뉘어 동아시아해양 전체를 분쟁지역으로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대(大)분단체제는 다시 초강대국과 차(次)상위강대국으로 서로 재편되면서 새로운 냉전체제를 만들어나간다.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분단체제의 성격은 다시 강대국의 수를 뜻하는 극성(polarity)의 형태로 나타내기 시작하며, 그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양식을 결정짓는다. 이 극성은 바로 강대국을 중심으로 분단체제를 형성해가는 국가 간의 모든 권력분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극성적인 권력분포는 초강대국에 상응하는 차(次)상위 강대국으로 분류되어, 그 지역의 갈등과 연합구조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바로 근세 조선조 말의 냉전시기 동안에는 중국과 일본이 차(次)상위 강대국에 해당했었다면, 지금은 중국과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발전하고, 다시 일본과 러시아는 초강대국에서 차(次)상위 강대국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에서 강대국을 기점으로 만들어지는 분단체제의 이론적인 전제는,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상호관계의 역사적인 인식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인 인식구조가 그대로 현대사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우리들은 동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하여야만 한다. 근현대사에서 동아시아의 대소분단체제를 만들어온 역사적인 관계를 이해하고, 우리들이 새로운 행위양식을 변환하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사인식에 대한 구조주의와 현실주의이다.

 

구조주의는 역사적인 삶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의 의식 속에 잠재적으로 만들어진 의식구조이다. 이러한 잠재적인 의식구조는 좀처럼 깨어지지 않는다. 우리들은 이제 이러한 역사적인 의식구조주의를 개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민족이 만들어온 동아시아의 냉전분단체제는 다른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가 동아시아에서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반드시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만 할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바로 동아시아의 모든 대소분단체제의 냉전체제를 끝내고 평화로운 평화체제로 만들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대소분단체제의 냉전체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현실을 바로 보는 현실주의에 있다. 우리들은 이 현실주의를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또한 살펴볼 수 있다.

 

근세 조선시대에서 우리민족은 변화하는 세계열강문명의 제국주의문명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대원군의 폐쇄정치로 국제적인 문호개방정책을 펴지 못함으로서 결국 조선이 무너지는 쓰라린 역사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바른 역사는 현실을 바로 직시하는 눈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은 반드시 현실적이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현실적인 감각은 바로 국가행위로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러한 국가행위는 국민과 국가를 이끌어가는 바른 사회지도층들의 리더십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적인 국가리더십은 과연 어떤 것일까? 바로 근현대사를 이끌어 온 바른 리더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근대사의 성웅이순신과 현대한국전쟁사의 임부택장군을 통해서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성웅이순신과 임부택장군은 똑같이 국가가 처한 어려운 국난에서 정치적인 야욕에 눈길을 전혀 두지 않고, 오르지 현실적인 정확한 판단으로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서 우리민족의 어려운 국난역사를 홀로 지켜내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임부택 장군
임부택(1919~2001)장군은 한국전쟁 시에 환생한 ‘이순신 장군’이라는 소리를 듣는 분이다. 만일 이순신장군처럼 한국전쟁에서 임부택 장군이 없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바로 북한이 말하는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임부택 장군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춘천에 주둔한 국군6사단 7연대장이었다. 그는 이순신장군처럼 한국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미리 알고, 이미 1년 전부터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라 북한군의 남침노선을 예상하고, 그 지역 방어를 위해 철저히 유개호와 토치카로 요새화하여 서부전선의 춘천방어를 승리로 일구어낸 것이다.

 

 이는 결국 중국. 소련. 북한이 힘을 합쳐 72시간 이내에 서울을 공략한다는 72시간 선제 타격작전을 무력화시켜, 바로 임부택 장군이 북한군을 3일간 서부전선의 춘천에 묶어둠으로서, 뒷날 낙동강 전선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임부택 장군의 정신적인 자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현실주의는 바로 이순신 장군이 말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산다는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의 현실적인 국가관에서 나타나는 것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의 대소분단체제의 가장 중요한 당사국이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대소분단체제는 역사적인 인식구조로서 지금 대한민국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동아시아의 역사적인 인식구조가 만들어낸 구조주의적인 냉전체제에서 반드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초강대국 미중과 차(次)상위 강대국인 러. 일을 중심으로 작동되고 있는 동아태지역의 대소분쟁체제의 냉전체제를 바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해도는 바로 현실주의에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바로 분석하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현실이란 것은 냉엄한 국제적인 의식의 모든 틀이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현실적으로 이 주어진 모든 행위의 표현을 국가(state)를 통해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란 국제관계에 있어서 합법적인 주권자로서 행위 할 수밖에 또한 없다. 그리고 이 주권(sovereignty)이란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행위자가 국가 위에 부재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실주의는 국가를 행동하도록 만드는 요소로서 인간의 본성을 가장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자들에게 인간의 본성은 고정적이며 무엇보다 이기적일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의 대소분쟁체제에서는 현실적으로 모두 자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국가들 간의 강한 권력투쟁들이 표출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동아시아 대소분쟁체제에서 모든 열쇠를 쥐고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절묘하게 힘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만들어내는 현실주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만일 이처럼 철저한 현실을 파악하려는 정신이 모두 무너지면, 대한민국은 근세조선조 말에 있어서 것처럼 새로운 전쟁의 중심지역으로 우리의 한반도를 내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이어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동아시아해상지역에서 세력균형을 통해 어떤 특정한 국가가 모든 힘을 갖지 못하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시대에 성웅 이순신과 임부택 같은 국가정신력으로 이 나라를 지켜내려는 강한 자강을 이루는 모든 애국관(愛國觀)을 국민모두가 만들어내야만 할 것이다. 또한 다시는 전봉준과 같은 농민들이 삶의 모든 고통에 지쳐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에 항거하는 고달픈 역사가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잘못된 역사관의 의식적인 구조주의를 탈피하고, 새로운 현실주의로 동아시아의 냉전분단체제에 철저히 임해야 할 것이다.

 

방방곡곡 뉴스 황청호 논설위원 www.bbggnews.com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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