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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7/16  황청호
선원사지의 진실과 팔만대장경 판각정신을 찾아서...

무너진 한국불교 강화도 선원사에서 부활

 

정확한 선원사지 규명이 우선되야

         8만 1258판 쌓으면 높이 약 3200미터로 백두산(2744m)보다 높아

              팔만대장경 강화도로 다시 복귀시켜 판각 정신 승화시켜야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을 민족통일과 국가번영의 정신으로 승화

 

 

나는 고대 역사시대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난의 역사를 지켜내면서 인천을 중심으로 하여 동아시아의 세계사를 바꿔나간 한민족정신문화의 섬 강화도를 찾아 떠난다. 특히 이번 역사탐방기행의 목적은 바로 무너져가는 한국불교문화의 바른 맥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며, 이번 불교문화탐방에는 언론사 방방곡곡의 식구들이 함께 참여하여 주었다. 강화도에는 우리나라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3개의 큰 사찰이 있다. 바로 오랜 민족문화의 정신이 서려있는 전등사, 서해정토세상의 진여정신이 담긴 보문사와 그리고 불교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이 숨어있는 선원사이다.

 

전등사(傳燈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서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절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고려 충렬왕(충렬왕 8년. 1282년)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이를 기념하여 전등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특히 이 절의 뒤편에 있는 정족산의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하여 신성시되는 성이다. 아울러 강화도에는 한국의 3대 해수관음기도장의 하나로서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창건한 보문사가 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현시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세계인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성지인 선원사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 불교문화의 성지 선원사(禪源寺)

선원사(禪源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충렬사 부근(신동국여지승람, 강도지, 강도부지, 고려사, 여지도서)에 있는 고려시대의 사찰로서 여몽전쟁 시에 몽골의 침략을 피해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우가 이곳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온 후 고종 32년(1245년)에 창건한 원찰(願刹)이다.

 

충렬사, 고려시대 선원사지 추정터

 

당시 고려는 부처님의 원력이 담긴 매서운 선림의 칼(禪林之劍)로서 어려움에 처한 국난을 타개하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이곳에서 대장경을 판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당대에 가장 신망 높은 진명국사(眞明國師), 원오국사(圓悟國師), 자오국사(慈悟國師), 원명국사(圓明國師), 굉연(宏演)국사 등 나라의 큰 스승이신 국사들이 나온 사찰이기도 하다. 따라서 선원사(禪源寺)는 여몽전쟁 당시 고려를 대표하는 큰 사찰이었으며, 한국불교의 모든 보국정신이 살아있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선원사는 송광사(松廣寺)와 함께 고려를 대표하는 2대 사찰로 손꼽히던 큰 사찰이었다. 그러나 고려의 왕실이 다시 개경으로 환도한 뒤 차츰 쇠퇴하기 시작하여 조선 초기 이후에 들어와서는, 조선의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에 따라 폐허화된다. 그리고 선원사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한국불교는 말 그대로 불교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문화를 모두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외설 된 사대주의에 빠져들어 나라를 망쳐간 것이다.

 

선원사(禪源寺)는 현재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의 판각재조사업(再彫事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7년(1398년)에 이 절에 있던 대장경판(大藏經板)을 서울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초기까지는 대장경 판이 선원사에 보관되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다만 대장도감(大藏都監)의 본사(本司)가 강화도에 있었고 승려들이 경판을 필사하고 조각하였다는 점 등을 통하여 경판을 보관하였던, 이 절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현재 충렬사, 선원사지(강화 향토사학자 주장)는 그 입지적 조건이 대장경판 간행사업을 진행시키기에는 아주 적합한 곳에 위치해 있다. 고려의 두 궁성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고, 절의 앞뜰에서 부두가 보이는 곳이어서, 목판 재목을 운송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또한 고려 충렬왕 때에 선원사를 궁전으로 사용하였을 만큼 규모가 컸다는 점 등을 미루어보아 선원사의 불교적인 위상을 감히 짐작케 한다. 우리들은 지금 이러한 불교문화의 판각정신이 흐르고 있는 선원사지를 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버린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

우리들은 고려 여몽전쟁당시 몽골군에 밀려 이 곳 강화도로 천도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몽골 오랑케를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며 분투했던 곳이 선원사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은 마치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선열들의 눈물과 같이 느껴진다.

 

 

우리들의 눈에 들어온 선원사지는 고려시대 융성했던 그 불교문화의 역사성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도 그리고 팔만대장경을 판각하며 나라를 지키고자했던 고려인의 그 숭고한 정신도 모두 이곳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고려 고종 23년(1236년) 몽골의 침략에 대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백성들은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고종38년(1251년)까지 무려 16년간에 걸쳐 온갖 정성을 다해 불사를 회향했던 그 판각의 정신문화가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당시 불사를 일으키고자 하였던 충신들이 다음과 같이 뜻을 모았던, 그 보국정신이 이곳에는 없는 것이다.

 

“임금이 문무백관과 함께 크나큰 발원을 세워 이미 구당관사(句當官司)를 설치하고 대장경의 판각을 시작코자 하옵니다…모든 부처님과 성현 및 삽심삼천께서 이 간절한 기원을 들으시고 신통의 힘을 내리시어 저 추악한 오랑캐 무리들의 발자취를 거두어 멀리 달아나 다시는 이 강토를 짓밟지 못하게 하옵소서….”-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권25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判君臣祈告文)〉

 

선원사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처럼 팔만대장경 판각지로 당대 최고 선승이었던 걸출한 선승들이 주석했을 정도로 그 이름이 드높았던 곳이다. 하지만 선원사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폐사됐다. 현재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터는 동국대학교 강화학술조사단이 1976년 강화도 일원의 지표조사를 하면서 처음 발견했고, 당시 건물 주춧돌과 보상화무늬 전돌ㆍ범자(梵字)가 새겨진 기와ㆍ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이 출토됐다. 그리고 1977년 사적 제259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강화군 향토사학자들은 성급한 문화재 지정이라는 의견이다.

 

현 문화재로 지정된 선원사지, 강화향토사학자들은 부정하고 있다.

 

1996년부터 4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금당터 등 건물지 21개소와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됐으며, 축대ㆍ배수시설 유구ㆍ연화문 기와ㆍ금동탄생불ㆍ청동나한상ㆍ불에 탄 금니사경ㆍ묵서사경 등이 출토돼 옛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현재는 발굴이 중단된 상태이다. 출토된 유물 가운데 팔만대장경 판각지라고 확증할 자료는 아직도 출토되지 않아 그 쓸쓸함이 찾아든다.

 

이처럼 여몽전쟁이후 700여 년 간 정확한 절터를 규명하지 못한 채 남아 있던 선원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불사는 어느 누가해야 하는가? 지금 정부와 불교계는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을 복원하지 못하고 모두 손을 놓고 있다. 오르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의 관광작업해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고려의 보국정신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정부와 불교계의 문화정책 속에 불교의 숭고한 정신이 모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에 들어와 민족종교로 자리 잡은 그 불교의 맥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다시 민족종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불교문화의 새로운 정신을 반드시 복원시켜야만 한다.

 

팔만대장경의 판각기술이 주는 위대성

팔만대장경의 정신은 그 보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팔만대장경을 만들고자 했던 당시 처절한 국민정신에 있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이 살아있는 선원사는 빛을 바래고, 현재 팔만대장경을 이용하여 돈 벌이에 급급한 해인사의 창고만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들은 여몽전쟁 당시 왜 고려 백성들이 팔만대장경을 만들고자했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이제 팔만대장경의 그 제작과정의 위대성을 살펴보자.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1251년에 완성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목판이 무려 8만 1258판(1962년 12월 국보 32호로 지정)이며, 그 전체의 무게가 무려 280톤이다. 그리고 8만 1258판을 전부 쌓으면 그 높이는 약 3200미터로 백두산 (2744m)보다 높으며, 길이로 이어 놓는다면 150리(약 60km)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이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나무 수는 1만∼1만5000그루(지름 50∼60㎝ 기준)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판을 새기는 데 연인원 130여만 명이 동원됐을 것이라고 한다. 보조 인력을 빼고 달인의 경지에 이른 장인(匠人)들만 계산해도 무려 12년간 매일 300∼1000명이 일했을 거라는 얘기다.

 

이렇게 방대한 팔만대장경의 분량은 양적인 것 이외에도 질적으로도 아주 우수하다. 마치 숙달된 한 사람이 모든 경판을 새긴 것처럼 판각 수준이 일정하고 아름다워 조선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는 그 글씨를 보고 “이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서 쓴 것 같다(非肉身之筆 乃仙人之筆)” 고 감탄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팔만대장경을 지금 만든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대장경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학자들에 의하면 “고려시대의 정성과 재료, 기술에는 절대 미칠 수 없다”는 전제 아래에서 “경판 한 장에 최소한 300만원은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팔만대장경의 제작에는 총 2500억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또한 쌀값으로 따지면 138만 가마(80㎏×18만원)에 맞먹는다. 고려시대의 인구와 국난을 당해 쇠락한 국력 등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지금도 대장경을 한 번 청소하려면 3년의 시간과 3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오자나 탈자가 거의 없으며 근대에 만들어진 것처럼 상태도 아주 양호한 편이다. 그래서 세계는 팔만대장경을 두고“목판 인쇄술의 극치이며, 세계의 불가사의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선원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없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당시 고려가 처하고 있었던 시대정신이 사라지고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은 이러한 고려의 정신을 배우지 못하고, 지금 이 나라를 분열과 고통의 나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선원사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이 주는 깨우침

강화도는 한국 불교문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바로 오랜 민족문화를 탄생시킨 전등사가 있으며,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백성들이 꿈꿔왔던 진여장의 불국토를 건설하고자 했던 보문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강화도가 주는 불교문화의 우수성은 당연 선원사에 있다. 하지만 선원사는 현재 정부와 불교계의 관심 밖에 밀려나 있다. 이씨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폐허화된 선원사는 현대적인 자본주의의 개념에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모든 책임을 과거 역사로 돌리려는 정부와 불교계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 또한 달갑지 않다. 오르지 자본이라는 한 단면으로 불교사를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위대한 불교문화가 지금 이처럼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선원사지로 추정되는 충렬사에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 행촌 이암 선생집 해운당이 있었던 강화읍 남산을 오른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작고한 성철 스님을 생각한다. 성철 스님의 위대한 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가르침이 나의 마음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선원사가 걸러온 모든 비운의 운명을 생각하며, 나는 시를 써 내려간다.

 

산수명상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으로서 물은 물로서 색깔 없이 깨끗이 보나니

이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바로 보는 마음으로 무상심이로다.

 

변함없는 우주의 본질 그 자체를

바로 보는 마음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산은 산이지만, 예전의 그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지만, 예전의 그 물이 아니로다.

 

이는, 항상 변화하는 우주의 실상을 보는 마음이로다.

마치, 재행무상의 변화하는 우주를 바로 보는 마음이로다.

 

산은 산이요 꽃은 꽃이로다.

물은 물이요 물의 육각수는 육각수로다.

 

산은 꽃과 같은 그 아름다운 특징이 있으며

물은 육각수처럼 생명수로서

또한, 그 아름다운 특징이 있다.

 

이는, 주어진 그 특징을 바로 볼 줄 아는 마음이니

우주가 하나로 합쳐지는 그 이치를 깨우쳤음이라.

마치, 하나의 자석 속에 음과 양이 한 몸으로 존재하듯이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물은 산이요 산은 물이로다.

 

산은 모여 저 아름다운 계곡 수를 만들어내고

그 물은 또다시 모여 진여의 바닷물은 만들어낸다.

 

그 물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산을 살찌운다.

 

이어찌, 윤회자연의 아름다운 숨소리가 아니런가!

산은 물이 아니요 물은 산이 아니로다.

 

물은 산이 아니요 산은 물은 아니로다.

우리가 보는 이 우주는 태초에 열리었으나

 

그 열린 우주는 열린 우주가 아니로다.

마치, 뫼비우스 띠나 게놈의 유전자 암호처럼

 

하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시작된 하나는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 뜻은 그는 알리라.

이것이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우주라는 사실을

산승은 산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외친 그만은 알리라.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그 단순함 속의 깨우침, 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 깨끗함과 단순함만으로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바로 복잡한 사회가 융. 복합처럼 다양하게 얽혀있는 사회이다. 산에서 수행만 했던 선승은 인간세상의 복잡계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나는 까랑까랑하며 우렁찼던 그 옛날 성철 스님의 큰 목소리를 생각해낸다. 이제 스님의 철학은 우리 시대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라는 민주주의가 우리사회를 미쳐가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이 살아 숨 쉬는 선원사, 이곳은 지금 자본주의라는 그릇된 작대에 빠져 고려 시대 백성들의 죽음의 의미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지켜낸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인데, 우리는 지금 그것을 보지 못하고 불교의 숭고한 정신에 흑 탕질 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남산을 내려온다. 그리고 선행리 선원사지를 바라보며 탐방여행의 매듭을 지어나간다.

 

 

끝맺는 말

여몽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고자 아우성치는 고려백성들의 생명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 울음소리를 달래고자 매서운 선림의 칼(禪林之劍)날로 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고려불교문화의 성지 선원사, 지금 선원사는 죽어가고 있다. 한 시대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자본이라는 틀에서 죽어가고 있다. 융성했던 고려의 불교문화는 개혁의 칼날로 일어선 조선의 유교문화에 죽어간 것이다. 그리고 유교문화는 현대사의 기독교문화에 똑같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대마다 돈의 유혹에 밀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종교가 정치화되고 자본화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우리시대 북한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북한에 들어간 기독교는 주체사상이라는 정치화로 변질되어 이미 만신창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성철 스님이 아무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외처본들 자본주의로 퇴색된 국민의식 속에는 허공에 메아리일 뿐이다. 우리는 이 허공의 메아리 속에서 선원사가 만들어낸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을 반드시 살려내야만 한다. 팔만대장경을 이용하여 관광에 이용하려는 해인사의 창고정신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고려백성들이 죽음으로 팔만대장경을 이곳 선원사지에서 판각했는지, 그 시대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교와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고려. 그리고 동 시대를 살았던 고려백성들이 오직 불심(佛心) 하나로 나라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그 고려인들의 판각정신을 오늘날의 시대정신으로 되살려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고려가 왜 몽골에 의해 무너지지 않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의해 무너졌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부에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나가고 있는 모습 속에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이 서려있는 선원사를 복원하고 해인사에서 강화도로 복귀 해야만 하는지 그 해답은 여기에 있다. 국민들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은 바로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팔만대장경의 판각정신을 승화시켜 우리민족의 소원인 통일과 국가번영의 정신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방방곡곡 황청호 칼럼니스트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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