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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08/27  김지영
송암 박두성 선생 제63주기 추모행사

2026년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을 맞이하며

송암 역사공원 · 기념관 건립 · 유택(묘) 이장 · 지입로 정비해야

 

 송암 박두성 선생 제63주기 추모행사가 사)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노창후/사무처장 김경호) 주최와 송암점자도서관 · 송암박두성문화사업회(이사장 박상은/사무장 이상만) 주관으로 2026년 8월 25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 송암 박두성 선생의 생가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박혜숙 유가족 대표, 박상은 송암박두성문화사업회 이사장, 노창우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장, 고성선 목사, 사단법인 송암박두성문화사업회 방제희 고문, 자문위원 한기출 우광덕 박원재 김명경 박장규 최태환 류중현, 손윤경 이사, 윤용완 회원과 인천광역시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선희 팀정의 사회로 거행되었다.

 

 이날 인천역사어린이 합창단의 독립군가와 송암 박두성 선생 노래, 노창우 회장과 박상은 이사장의 추모사, 박찬대 인천광역시장의 추모영상, 김경호 사무처장의 송암 선생 연보 낭독, 박혜숙 유가족의 추모시 낭독, 장다예 문화해설사의 송암 선생 생가 해설 등 식순으로 송암 박두성 시각장애인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며 앞으로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였고 송암 선생의 거룩한 업적을 기리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박상은 이사장은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스승이시며 한글 점자의 창안자이신 송암 박두성 선생의 숭고한 삶과 업적을 기리고 그 뜻을 다음 세대에 이어가기 위해 해야 할 사업 ▲약 5천평의 역사공원조성, ▲송암 박두성 선생 기념관 건립 ▲송암 박두성 선생 유택(묘) 교동면 상용리로 이전 ▲생가 진입로 정비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본 사업은 단순히 지방자치단체의 관광사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송암 선생은 강화의 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장애인의 교육권과 인간의 존엄을 실천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훈맹정음은 우리 한글의 자주성과 함께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입니다.


 이미 선생의 관련 유물들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생가도 복원되었습니다. 이제 흩어져 있는 이 역사적 자산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국민 모두가 찾아가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역사기념공원 조성과 기념관 건립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라며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을 맞는 우리의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한고 하였다.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은 1888년 4월 26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 516번지에서 아버지 박기만의 6남 3녀 중 맏아들로 출생 양사면 인화(寅火)리, 강화북단(별립산/강화 생명의 바다), 북한 개풍군 풍광을 보며 성장하며 소년시절 집 뒤 화개산에서 뛰어 놀았다.

 

 1895년 8세 전국 소학교령이 공포된 이후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 선생이 강화도에 세운 보창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교육을 받고 졸업하였다. 1901년 14세 극심한 흉년이 들어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인천을 통해 일본상선을 타고 오사카로 떠나 두 달간 점원 생활할 때까지 교동도에서 화개산을 벗삼아 놀았으며 정상부근 암각화를 발견했을 것이다.

 

 1913년 26세 1월 6일 재생원 교사 발령을 계기로 시각장애교육과 인연을 맺으며 7월 14일 일본으로부터 점자제판기를 도입하였고, 8월 25일 한국최초의 점자교과서(일본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919년 32세 3월 천자문 점역 제판 완성, 1920년 33세 1월 본격적으로 한글점자 연구에 몰두,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홀이 만든 점자를 보완하여 한글 3.2점식 점자 완성하였다.

 

방방곡곡 김지영 기자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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