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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02/21  김지영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 학술연구 발표
13세기 거란 유종의 고려 침략과 대응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 학술연구 발표

13세기 거란 유종의 고려 침략과 대응

 

13세기 거란 유종의 고려 침략과 대응,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 학술연구 발표회가 2011년 2월 11일 울산 롯데호텔, 2월 17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각각 14시~18시까지 5시간에 걸처 열렸다.

 

 

한국중세사학회 주최하고 울주문화원 주관하여 언양김씨대종회의 후원으로 진행된 학술대회는 국내 사학과가 개설된 15개 대학교에서 착출한 20명의 역사학자가 참여한 한국중세사학회 제84회 연구발표회이기도 하였다.

 

이날 학술대회는 기념식과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 1부에는 홍영의 숙명여대 교수와 도현철 연세대학교 교수가 사회로 진행되었다.

 

▲ 이정신 한국중세사학회 회장

 

이 자리에서 이정신 한국중세사학회 회장(한남대)은 “고려 고종때에 거란군을 물리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취려 장군 연구 발표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김일웅 언양김씨 종친회 회장과 대종회, 변양섭 울주문화원 회장과 문화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김취려 장군이 살던 시대인 몽고가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의 고려의 대외관계나 김취려의 정치적 군사적 활동, 그리고 그를 평가하는 문제는 우리 고려시대사에서 한번은 다루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는데 이 방면에 관심있는 고려시대 연구자들이 참여한 이 발표회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발표회가 김취려 장군과 그 시대를 이해하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개회사를 하였다.

 

▲ 변양섭 울주문화원장

 

변양섭 울주문화원장은 “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의식은 그 민족의 정체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 역사적 정기를 찾아 지키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때에 울산이 낳은 구국의 명장 김취려장군의 활약상을 평가하여 재조명하기 위해 김취려 장군 활약상이란 주제로 학술 발표회를 갖게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난 울산의 제1차 발표회에서 많은 시민들이 김취려 장군의 훌륭한 업적을 알고 울산시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울산에 이어 이번 서울에서 수고 하여 주신 한국중세사학회 이정신 회장과 좌장을 맡아주신 박종기 전 회장, 언양김씨 대종회 김일웅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박한남 국사편찬위원님, 신안식 숙명여대 교수님, 도현철 연세대 교수님, 김용석 한림대 교수님, 김호동 영남대 교수님, 윤용혁 공주대 교수님과 토론을 맡아주실 김순자 한신대 교수님, 김인호 광운대 교수님, 최연주 동의대 교수님, 좌장을 맡으신 동아대 김광철 교수님, 홍영의 숙명여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학술대회로 선조들의 역사적 발자취가 우리 앞에 우뚝 섰을 때 내일을 향한 우리의 긍지가 더욱 높아지는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에서 밝혀진 대로 김취려 장군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국의 결단으로 구출한 명장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김취려 장군에 대하여 재 조명함으로써 그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을 계기로 우리 모두의 뜻을 모아 김취려 장군 기념관이 건립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주실 것을 주문합니다.”라는 환영사를 하였다.

 

▲ 김일웅 언양김씨대종회 회장

 

이어 김일웅 언양김씨대종회장은 “저는 위열공 김취려 장군의 23대 손이며 언양김씨 대종회장입니다.

 

공사간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위열공 김취려 장군의 학술연구발표회를 빛내주시기 위하여 참석해주신 문중 여러분과 심포지엄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주관해주신 변양섭 울주문화원 원장님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비중있는 학술연구발표회 준비를 위해서 위열공 김취려 장군에 관한 많은 문헌을 조사 연구 검토하고 고증을 거쳐 명실상부한 학술회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정성을 다해주신 한국중세사학회 이정신 회장님을 비롯하여 오늘 연구발표와 토론에 참여해주신 교수님 여러분께 깊은 경의와 아울러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는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지혜와 용맹으로 우리나라를 구하신 고려명장 김취려 장군의 위업을 중심으로 ‘13세기 거란 유종의 고려침략과 대응 및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김취려 장군의 위업과 인품을 재조명하고 그분의 숭고한 호국정신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열리는 학술회의입니다.

 

위열공께서 1234년에 서거하신지 무려 777년 만에 비로소 열리는 학술회의지만 후손들로서는 실로 감개무량하며 영광스럽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위열공 김취려장군께서 나라를 구한 애국충정의 내용등이 실려 있었지만 지금은 그 내용이 없어졌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국사교과서 마저도 필수과목에서 제외되어 한국인의 뿌리 교육이 잘 안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교육을 중시하고 학교 교육의 필수과목으로 지정을 검토한다고 하니 오늘의 학술연구발표회를 통해서 위열공 김취려 장군의 호국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됨은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또 이에 부응하여 울주문화원을 중심으로 언론인과, 울산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호국의 인물에 걸맞게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는 선양사업운동이 전개되어가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환영하는 바입니다.

 

각 지역마다 그 지방 출신의 인물을 추앙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사당이나 기념관을 건립하고 동상을 세우며 선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훌륭한 정신을 받들기 위하여 시민들이 나서서 향사를 지내는 예는 각지역에 많이 있습니다.

 

울산광역시 문화재 기념물 제7호인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위열공묘소도 성역화되고 기념관과 사당 동상등이 건립되어 울산시민의 자긍심을 높인다면 더 없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존경하는 참석자 여러분!

 

오늘 이자리에 참석해주신 울주문화원 원장님과 한국중세사학회관계자, 언론인 그리고 내빈과 종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신묘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하면서 인사에 갈음합니다.”라며 축사를 하여 학술대회의 장을 열었다.

 

이날 1부, 2부에서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어 박한남 (국사편찬위원회)교수는 ‘13세기 동북아 질서와 고려의 대외관계’, 13세기 초 몽골의 금 정벌과 남송의 대몽골 교섭, 거란유종의 고려 침입 배경과 동진국의 등장, 강동성 전투에서 몽고와 형제맹약 등 거란 유종의 침입에 대한 당시 구체적인 정세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였다.

 

신안식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거란유종의 침입과 김취려 장군의 박달제(1217) ? 강동성(1219) 전투’란 주제를 발표, 거란유종 선발대와의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던 대표적인 인물을 김취려를 연구하였다.

 

그는 고려 고종 3년8월 기사일(18일)에 후군병마사로 인명된 이후 많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다. 그는 뛰어난 용장(勇壯)이면서 전술가였다며 승리에 자만하지 않고 보다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내는 장수라고 평하였다.

 

거란은 금나라와 몽골의 사정권을 벗어나기 위해 고려로 남진을 계속했으나 이를 저지한 전투가 맥곡 전투, 박달현 전투 등으로 이 전투에서 승리로 거란의 남진을 저지하는 계기가되었다.

 

또한 몽골과 동진국 연합군이 고려를 침략시 몽골의 의도를 간파하여 여몽연합을 이루어 거란유종의 잔여세력을 완전하게 소탕하고 고려와 몽골이 형제맹약을 맺는대 김취려의 공을 평가하였다.

 

 

김용선 한림대학교 교수는 ‘김취려의 관력과 활동’, 김취려(명종2~고종21,1172~1234)는 무인정권기에 고려를 침입해 온 거란을 물리친 장군으로 유명하다. 고종 6년 1219년 정월에 몽고와의 합동작전으로 강동성을 함락시키면서 거란군을 패배시켰던 당시 서북면병마사 였던 그가 부원사(副元師)급의 지위로 참전한 이 전쟁이 고려와 몽고와의 첫 번째 접촉이자 이후 몽고와의 관계에 큰 영향이 전개되었다. 이 때 나이 47세였던 그가 여러관직을 거처 최고 지위인 수상(首相)에까지 올라갔다.

 

김용선 교수는 고려사, 이재현의 김공 행군기, 김취려 묘지명, 고려대와 조선시대의 기록을 참고하여 김취려의 자취를 찾아주었다.

 

 

김호동 영남대학교 교수는 ‘고려?조선초 언양김씨 가문의 관계진출과 정치적 위상’은 충선왕때 왕실과 통혼할 수 있는 15개‘제상지종’은 누대을 재상을 지낸 집안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언양김씨가 포함되었다. 언양김씨가 재상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은 김취려이다.

 

김호동교수는 신동국여지승람, 구조방일, 세종실록지리지, 언양현읍지, 고려사, 조선왕조신록, 세종실록, 문종실록, 세조실록, 성종실록, 국조방목, 강제총화 등의 기록을 통해서 위 주재를 설명하였다.

 

 

윤용혁 공주대학교 교수는 ‘김취려의 인물사적 평가와 의의’란 주재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몽고침략의 전야, 거란적의 침입에 대하여 가장 큰 공을 남긴 인물이 위열공 김취려 장군이다.

 

김취려의 인물을 평가하는 근거를 동국병감, 고려사, 김취려 묘지명,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이제현의 김공행군기,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동사강목 등의 사서를 근거로 13세기 초의 대외관계, 13세기의 평가, 14세기 이제현의 김공행군기, 15세기의 김취려에 대한 평가를 연구하였다.

 

김취려 장군은 거란침략을 물리친 충의의 용장으로 몽고와의 관계에서 대외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외교방식에 평화체계를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의 공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서도 크게 평가되었다.

 

김취려의 인간적인 측면은 충직 그리고 의용(義勇)과 관후(寬厚)하였다. 외모와 체격이 출중하였고 유달리 긴 수염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려사에는 김취려의 키가 6척 5촌(195cm)이나 되는 체격에 수염이 길어 배를 지났으므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반드시 여종 2명에게 수염을 좌우로 갈라들게 한 다음 띠를 매곤 하였다. 합진(몽고장수)이 김취려의 용모가 뛰어나므로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라고 기록되었다.

 

동문선에는 김취려는 제비턱 같은 기이한 모습이요, 이무기 수염처럼 특이한 풍체였다. 활을쏘는 재주는 묘한 지경에 달하여 벽력의 소리와 같고, 전술은 귀신을 통하여 번개같이 빨랐다.

 

김취려에 대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공직자로서 책임감이 투철하고, 전투에 임하여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군인의 표본이었다는 점이다.

 

그 예로 이제현의 김공행군기에 묘사, 고종3년(1216) 가을 거란이 처음 침입하였을 때 3군의 후군사(後軍使)가 되어 전쟁에서 “홀로 아군의 선봉이되어” 적을 격파 하였다. 이듬해 1217년 1월 금오위 상장군에 임명되어 5군의 후군을 이끌고 안주 부근 주둔하였는데, 行營이 패하여 도망하자 “공이 홀로 마주 싸워 창과 화살이 온을 뚫는 것조차 알지 못하였고” 이 때 그는 거의 전사할 뻔 하였다고 한다. 등의 연구발표 하였다.

 

 

또한 종합토론에서는 김광철 동아대학교 교수가 좌장이 되어 김순자 한신대학교 교수, 김인호 광운대학교 교수, 최연주 동의대학교 교수, 윤용혁 공주대학교 교수, 김인호 동의대학교 교수, 김용선 한림대학 교수가 주제 발표한 내용에 대한 의문점과 그에 따른 답변으로 김취려 장군의 활약상과 시대적인 배경을 뚜렷하게 밝키게하였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언양김씨 문중과 관심있는 서울의 시민 학생 등 250여명(울산 350여명 KBS, MBC, 다수 언론사)이 함께한 가운데 장시간 진지한 모습으로 참여하였고 마지막으로 참여자들의 질문 순서에서 질문과 답으로 발표자와 참여자가 함께 공감하는 한국중세사학회 제84회 연구발표회가 되었다.

 

                  

 

한편 연구발표회에 함께한 ‘영웅 김취려’ 저자 황천우 작가는 “김취려 장군은 우리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다. 아니 내막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를 능가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조선과 고려라는 시대적 상황과 이순신 장군이 우리 민족이 영원한 숙적으로 간주하는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일구어 낸데 반해, 김취려 장군은 북방의 거란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전투에 임해서는 항상 선봉에 서서 기발한 전술과 계교로 적을 격퇴시킨 지장이었고, 모든 공은 수하 장졸들에게 돌리며 제 몸 이상으로 부하들을 고루 사랑한 덕장이었으며, 심지어 함께 참여한 투에서 나이 어린 큰 아들을 잃고 아군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상황 속에서도 오로지 구국이란 대의 앞에 스스로를 통제했던 올곧은 인물이었다.” 라며 앞으로 김취려 장군을 사극(史劇)으로 추진하여 전국민이 TV에서 만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하였다.

 

김연식 언양김씨장학회 이사장과 김정운 대종회 사무총장은 그간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후원한 울주문화원, 한국중세사학회, 연구에 참여한 교수, 김일웅 회장과 전국 4만 문중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한편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 2010년 12월 6일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71번지에 위치한 고려시대 장군인 김취려 묘를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하여 고시하였다.

 

방방곡곡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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