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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01/16  김지영
자랑스런 강화인, 코리아골프 & 아트빌리지 이동준(李東俊)회장의 제3 황금기 꿈을 향하여...

 

이동준 회장
이동준(李東俊) 코리아골프&아트빌리지(Korea Golf & Art Villge)· 주식회사 유성
(維誠) 대표이사 회장은 강화도가 지어낸 세계적인 기업인이다.

이동준 회장은 오늘도 서울 경제권의 중심 한국은행과 명동 롯데백화점 부근 40여년을 사용한 한진빌딩에서 인생 제3 황금기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진정한 강화도인 큰 꿈을 품다

 

이 회장은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에서 1940년 12월 15일에 부모님의 사랑속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고려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개울이 동락천이되어 흐르고, 강화부성이 축조된 북산과 남산이 東으로 뻗어나가 펼쳐지는 가운데가 역사 문화의 보고(寶庫)인 강화읍, 현재 국화 저수지가 있어 풍광이 좋은 터이다.

 

이 회장은 “저는 청소년기에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이 무술을 연마한 고려산에 오르며 별립산, 봉천산, 혈구산, 진강산, 마니산 등 강화도 부속도서를 포함한 전체와 북한까지 보며 어린시절 호연지기의 꿈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는 강화읍에 있는 113년 전통인 강화합일초등학교와 강화중학교를 다니며 옛 고려시대 수도의 문화와 역사를 느끼며 컸고, 서울 경동고등학교 진학하여 건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고려산과 강화부성에서 뛰어놀았던 진정한 강화인임이 분명하다.

 

 

그는 대학교 때 당시 미국인 본토 발음 연습을 하며 미국 LA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의 서부 개척사의 완성인 로스엘젤스(LA) 도시건설의 신화를 알게되었다.

LA는 당시 사막으로 1천만명의 인구가 살아갈 도시를 만드는데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먼 약 500km밖의 콜로라도 강물을 끌어서 만든 도시인데 이러한 거대함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청년시절 큰 꿈을 갖게되었다.

 

유성(維誠) 무역회사로 성공

 

이 회장은 30대 초반 1969년 9월 전세금과 전화를 담보로 오퍼상을 설립, 가발과 저품질 섬유가 수출 품목의 주종이었던 국내 수출업 초기 단계 시절에 불모지인 중동에 국내산 철강제품의 해외 처녀수출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외 유수 바이어 및 메인메이커와 신용으로 유대를 갖고 약 40년간 지속적인 거래를 하고 있으며 연간 5천만불에서 2억불을 수출하는성과를 올렸다.

 

또한 1970년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중동의 건설 붐에 힘입어1970년대 후반 국내 총 수출액이 미화 100억불 전후일 때 1억불 수출 실적을 올리기까지 연간 10여회 이상 5~6개월 해외 출장을 다니며 대한민국의 수출역군의 산증인이 되었다. 1971년 철강재를 국내 최초로 중동 등 해외 수출의 길을 텃으며 목재를 일본, 북미, 대만 등 외국에 수출입을 하며 신용을 자본으로 젊음을 힘으로 10년만에 1억달러 수출달성 했다.

 

그 결과로 1978년 11월 30일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진흥에 진력하여 산업발전에 이바지하여 헌법에 정한 산업포상, 1980년 12월 1일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이바지하여 헌법규정에 의한 동탑전업훈장, 1979년11월 30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으로부터 철탑산업훈장, 2007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해외무역진흥하여 국가산업에 기여하여 은탑산업훈장, 1991년 2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새질서 새생활 실천을 통한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여 영광스럽 표창장을 받았다.

 

이 회장에게도 시련도 있었다. 1980년 전 재산 250만불(23억)로 크레임을 해결하는 용단을내렸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해외에서 보는 국내 상황은 전시국가로 불신에 차있었다.

 

 당시 선수금을 주고 수출을 이행하기전 국내 메이커들의 도산으로 부득이 이중으로 상품을 다시 매입하여 선적하기까지 주저함과 망설임이 많았으나 개인적 친분과 대한민국 국민의 신용을 지키기 위하여 전 재산으로 새로 상품을 매입하여 수출이행을 한것은 당연한 일로 고심 끝의 결단이 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힘든 용단 이었다.

 

그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바이어들과 동일시장에서 지속적인 거래를 할 수 있는 신용을 심어 준 것은 개인과 대한민국 전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인간승리였다.

 

코리아골프 & 아트빌리지 성공적인 사업

 

이 회장은 골프와 아트빌지 사업도 한국의 일인자로 성공의 길을 달렸다. ‘코리아골프 & 아트빌리지(Korea Golf & Art Villge)’ 국내현황은 골프장 총 72홀(골드 36홀, 코리아 27홀, 퍼브릭9홀),45홀 라이트 시설 보유(골드 18홀, 코리아 18홀, 퍼브릭 9홀), 빌리지 주거용 콘도는 약300세대(기존)+ 약700세대(예정), 1차 주거용 콘도 100세대(25~40평), 2차 그린카운티 112세대(38~70평), 3차 기흥아펠바움 77세대(47~87평), 4차 투스카니힐스 91세대(48~124평)를 시공.

 

 

해외현황은 미국 California Golf & Art(18홀)2005년 4월 30일 인수, 운영 중, 중국 Long Life & Art Village(27홀)공사 중, 일본 Spring Golf & Art Resort Awaji(18홀) 2007년 인수 운영 중이다.

코리아골프 & 아트빌리지는 서울 강남에서 30분 거리에 있으며, 분당, 용인, 화성등 신흥 도시의 중심에 있습니다. 총 120만평 규모의 부지에 72홀 골프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향후 18홀을 증설하여 총 90홀의 국내 최대 규모의 골프장을 운영한다.

 

또한 Korea C.C 9홀 호텔 300객실 추진 중, 수도권 실버 타운, 골프장 9홀 추진 중, 수도권 퍼브릭 36홀 추진 중, 강화 실버 타운 500세대 추진 중, 중국 웨이하이 종합 리조트 추진, 일본 규슈리조트 신규 투자 중, 일본 북해도 리조트 제휴 중이다.

 

한편 2013년 2월 22일 강화군과 강화갯벌 생태공원 조성 업무협약으로 ‘강화종합휴양시설’을 추진중에 있다. 한편 2013년 3월 28일 경기도 관광공사와 체류형 관광단지 활성화 업무협약을 하였다.

 

고향과 사회에 대한 선행

 

이 회장님은 강화군 출신으로 고향에 대한 남 다른 애정으로 22년간 재경강화향우회장을 맡고 있으며 강화군과 사회에 선행을 하고있다.

 

1987년 새마을향토장학금 5천만원과 새마을 사무소 신축비 3천만원 등 매년 1억원 이상을 강화군내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예․체능특기생, 불우한 노약자와 소년소녀가장들도 후원, 2009년 초․중․고교에 1억원을 지원, 지역 사회단체에 1억 1천 4백만원을 후원, 2010년 11월 2일 강화사회단체 발전기금 6천 2백만원을 기탁, 2011년도에도 강화군 사회단체인 노인회 강화군지회 등 12개 단체에 후원금 지급, 2011년 강화군이 선정한『2011년 자랑스런 강화인상』을 수상한 이 회장은 시상식장에서 13개 읍․면 체육진흥후원회에 각 50만원씩 650만원의 지역체육진흥후원금 기탁, 2013년 6천만원 강화사회단체 후원금 지급을 하였으며 22년간 재경강화향우회 운영 행사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등 강화 후배에 대한 배려와 지역발전을 위한 선행을 긴세월 꾸준히 하여 귀감이되었다.

 

또한 불우이웃돕기 성금, 교회와 학교 장학기금, 모교 경동고등학교 동창회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동창회장, 연세대경영전문대학원 MBA 및 총동창회장으로 지속적인 봉사의 손길도 바쁘게 움직였다.

 

특히 영락교회를 찾은 첫날 100인의 시각장애인개안 수술비를 1,500만원을 후원했고, 거듭 2008년에는 100인 수술비 3,000만원을 지원하여 200명의 시각장애인들이 밝은 세상을 보게하였다.

 

인생 제3 황금기 30년간 건강한 몸으로 더 열심히 일

 

이 회장은 2001년 초지대교 추진으로 400억원 중 80억원만 받고 고향발전을 위한 미수된 400억원은 내 고장 발전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위안으로 포기하였다.

 

이 회장은 “앞으로 강화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접한 인천공항인 영종도와 연육교가 건설된다면 10분내 국제공항과 연계되어 제2의 송도도시와 같이 산업경제 관광 주거단지로 도시를 발전할 수 있고, 개성과 연계를 위한 북측과 개통이 된다면 남북안보 및 교역의 가교가 되고 물류유통으로 강화전역에 단군성립지로써 국제적 유명한 강화시가 탄생할 것이며 서울시나 인천시보다 더 쾌적하고 살기 좋은 대도시를 비약할 것이다.

 

강화가 규모있는 경제도시가 되려면 인구가 20만명 이상이 되어야 하고 교통이 좋아야한다.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강화는 물류와 관광 레저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것을 대비하여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서 강화까지 연륙교가 놓여져야 되고 개성공단 등 북한의 물류가 인천국제공항까지 30분대 거리로 가능할 것이며 고령화시대 강화는 문화관광 주거단지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강화는 아시는 바와 같이 구석기, 신석기, 고구려, 고려, 조선, 근대 역사문화와 자연문화가 함축된 최고의 관광지로 강화에 의료관광사업 헬스케어 사업이 전망이 높은 지역의 나라국부를 높이며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라고 강화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이 회장은 1970년부터 신용과 근면을 자본으로 수출입업 및 골프계에 종사하면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정도(定道)를 신조로 믿고 살아왔다.

 

그는 앞으로 수출을 지속하면서, 국민건강을 위한 대규모 리조트를 국내와 미국, 일본, 중국 등에 투자 운영하면서, 국내에는 ‘강화 종합휴양시설’을 추진하여 고령화 시대 노후 건강을 대비하는 국제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휴양을 겸한 헬스케어 의료관광사업을 추진하여 해외 환자 유치 등으로 외화 수입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특히 정부와 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군민의 동의가 있으면 영종도-강화도 연륙교를 건설하고, 강화군 선두리 일원에 계획하는 강화종합휴양시설을 만들어 공헌하고 싶습다고 말한다.

이 회장은 실제 나이 나이 74세, 신체 나이는 58세이고, 정신 나이는 30대로 나타나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인생의 제3 황금기 30년간 사는 날까지 건강한 몸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공수거(空手去)하겠다.

 

이 회장의 계획이 완성되어, 박상은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평화고속도로가 영종도-강화-철원-고성까지 이어지고, 박근혜 정부는 강화의 53돈대를 복원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게하여 인천공항의 환승객 1년 600만 명과 국내·외관광객, 수도권 인구가 휴식할 ‘강화 종합휴양시설’이 완성됐으면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주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 나라발전 · 지역발전의 진정한 정책과 경제계획에 협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애정을 가자고 지역 발전에 노력하고 사업을 성공시킬 인물에게 힘을 싣어 주어야 할 것이다.

 

방방곡곡 뉴스 金智寧 기자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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