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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5/01/11  김지영
한가락 시조 모임 김취려 장군묘 탐방

 

2015년 1월 10일, 창립 25년이된 한가락 시조회에서 언양김씨 대종회의 후원으로 강화군 김취려 장군묘를 참배하고 시조를 짓는 행사를 가졌다.

 

 

한가락 시조회는 한국의 아름다운 역사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단체이다.

중관 최근응 교수를 지도교수를 모시고 일주일에 1회 역사공부를 하고 1개월에 1회 선조들 중 올곧고 바르게 사신 스승삼을 만한 분들을 찾아가서 공부하고 공부한 내용을 우리다운 시조를 짓고 부르고 기행문을 덧붙여서 일년에 1회 책으로 발간하여 전국의 도서관에 기증하는 선행을 하고 있다.

 

이번 위열공 김취려 장군묘 탐방은 298번째이고 오는 4월 29일 창립 25주년 기념 25회 한가락 시조집에 발표된다.

 

김취려(金就礪)장군(명종2~고종21,1172~1234), 1234년(고종21) 강화에서 서거하니 고종이 친히 빈소에 나와 조의를 표하고 3일간 정사를 중지시켰다.

 

고려명장 김취려
김취려 장군
은 거란침략을 물리친 충의의 용장으로 몽고와의 관계에서 대외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외교방식에 평화체계를 구축한 그의 결정적인 역할과 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서도 크게 평가되었다.

 

김취려 장군의 인간적인 측면은 충직 그리고 의용(義勇)과 관후(寬厚)였다. 외모와 체격이 출중하였고 유달리 긴 수염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려사에는 김취려의 키가 6척 5촌(195cm)이나 되는 체격에 수염이 길어 배를 지났으므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반드시 여종 2명에게 수염을 좌우로 갈라들게 한 다음 띠를 매곤 하였다. 합진(몽고장수)이 김취려의 용모가 뛰어나므로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라고 기록되었다.

 

동문선에는 김취려는 제비턱 같은 기이한 모습이요, 이무기 수염처럼 특이한 풍체였다. 활을 쏘는 재주는 묘한 지경에 달하여 벽력의 소리와 같고, 전술은 귀신을 통하여 번개같이 빨랐다.

 

김취려 장군에 대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공직자로서 책임감이 투철하고, 전투에 임하여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있는 군인의 표본이었다는 점이다.

 

그 예로 이제현의 김공행군기에 묘사, 고종3년(1216) 가을 거란이 처음 침입하였을 때 3군의 후군사(後軍使)가 되어 전쟁에서“홀로 아군의 선봉이되어”적을 격파 하였다. 이듬해 1217년 1월 금오위 상장군에 임명되어 5군의 후군을 이끌고 안주 부근에 주둔하였는데, 行營이 패하여 도망하자“공이 홀로 마주 싸워 창과 화살이 몸을 뚫는 것조차 알지 못하였고”이 때 그는 거의 전사할 뻔 하였다고 한다. 등이 연구(한국중세사학회) 되었다.

 

방방곡곡 뉴스 金智寧 기자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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