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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6/27  김지영
강화군 인화리 강영뫼 학살실화

1950. 9. 29 북한 인민군 · 내무서원이 자행

인화리 강영뫼 골짜기 강화애국청년 73명 참살(慘殺)

선원면 금월리 김경환씨 부친 고 김윤태 애국청년도 살해

국가유공자 명단에도 없어 정부와 강화군은 억울한 유족의 한을 풀어줘야


참사 현장


   2023625일은 6.25전쟁 (1950.6.25~1953.7.27/1,129) 발발 73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19509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강화군에 고립된 북한 인민군과 내무서원은 강화군 내 국군가족과 공무원, 경찰가족, 반공청년 등 73명을 북으로 납북하던 중 바닷길이 막히자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창후리 경계 강영뫼 야산골짜기 부근에서 1950929일 이들을 집단학살 하였다.

 

 이곳은 필자가 태어난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들판 건너 현재 인화~창후 간 해안도로가 건설되는 부근 산골짜기로 인화리에서는 ‘70명 구덩이라 하여 그 참사를 마을 사람 모두가 두려움과 분노의 대사건으로 기억되었고 이야기가 전해졌다.


김경환 유족
 

 

  2023623일 오후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기세미 마을 김경환 주민은 언론사 방방곡곡 사무실을 방문하여 저희 김윤태 아버지께서 6.25남침 당시 반공청년으로 활동하시다 마을 사람의 밀고로 인민군에 잡혀 강화인삼조합창고에 73명과 함께 구금되었다가 1950915일 인화리 강영뫼에서 피살되었습니다.” 라며 한서린 눈물을 흘리셨다.

 

  당시 집단 피살자는 김경환씨 부친 김윤태 고인을 비롯하여 강영뫼 피살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선원면

김기재 김성재 김영수 이경용 김영복 김영백 김윤태 고상곽 이갑상 고민영 이승극 윤민균 이범주 김형태 윤일균 유진식 윤희균 황용문 장동근 고성원 (20)

 

양사면

이준식 곽성근 곽성옥 곽영봉 곽희봉 곽산옥 민정기 (7)

 

하점면

종창순 김유창 김유중 김유연 나홍대 (5)

 

교동면

전푱환 정규옥 윤병길 신도균 신복언 신용균 신경균 신양수 (8)

 

화도면

정산진 노정우 박승건 김문식 김용문 (5)

 

강화읍

엄창운 김대식 김종원 (3)

 

양도면

윤병선 송인근 민응기 전영극 남궁수 (5)

 

불은면

구병희 김학오 박종식 유두식 남궁택 (5)

 

길상면

김동식 김양묵 윤춘대 (3)

 

송해면

홍두섭 (1)

 

무명 11, 73

 

  정부 · 인천광역시와 강화군은 인화리 강영뫼 집단학살 사건을 재조명하여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유족에 대한 국가유공자 예우에 모든 행정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족인 김경환씨는 당시 고 김영석 조부 · 고 김윤택 부친의 집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907번지에 현재까지 자식을 잃은 김영석 조부의 한을 손자인 자신이 이어서 그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간 국가보훈처와 강화군에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있지 않은 상태라 법정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강화군 관계자는 김경환 유족을 찾아가 먼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재 강화유격용사위령탑 구석진 곳에서 세워진 순의비(殉義碑)에는

누구인들 죽음을 원하랴마는 정의의 죽음은 빛이 있고 누구인들 삶을 싫어하랴마는 구차한 삶은 보람이 없나니 이보람 없는 삶을 버리고 빛나는 죽음을 택한이가 과연 누구인가?

 

  이 자리에서 하루 아침 이슬로 살아진 70여 명인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슬프다 이네들이 6.25 국난을 당하여 살여면 방편도 없지않았으리련만 차라리 죽음의 길을 택하여 소지를 굽히지 않았으리니 가위 살아서 양민이요 죽어서 의령이라 어찌 청사에 무명의 빛을 남기지 않았으리오. 그대들이 이루지 못란 뜻은 우리 후배들이 달게 이어받을 터이오니 의령들은 부디 원한을 풀고 길이 명복을 누리시라. 1966년 병오 9월 순의비 건립 추진위원 일동라 쓰여저 한을 달래보았지만 나라를 위해 몸바친 선현들이 국가유공자 명부에도 못 올려준 것은 관계기관의 형식적이고 고압적인 행정이 한스럽다.

 

  한편 선원면 금월리 347번지 출신 이창제 (1932년생 93/선원초 19/영화중 졸업/6.25 강화군 금월리 피난/조카 이상순) 선생은 필자와 통화에서 본인도 인화리 참살에 해당 될 수 있었다며 이른바 마을 빨개 돌개가 주모자가 되어 강화군청이나 선원면 서기, 이장, 반공청년과 학생들을 밀고하였고, 당시 빨갱이는 산에서 쑥을 태워서 연기와 불빛으로 김포를 통하여 서울로 통신을 하였었죠. 양사면 인화리 강영뫼에서 참사를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현지에 가보니 시신의 얼굴은 알아 볼 수 없었고 돌아가신 분들은 모두가 두손이 철사줄로 굴비처럼 엮겨있었으며 총상은 없고 창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족들이 시신을 찾는데 입은 옷을 보고 찾을 수 있었습니다..” 라며 치를 떨며 울분을 터트리셨다.

 

  1950625 소련의 사주와 김일성의 야욕으로 북한군의 남침과 1953727일 휴전협정을 맺은 31개월 21,129일 동안 참혹한 피해 (한국군 소년병과 학도 의용군을 포함 62만 명, 유엔군 16만 명, 북한군 93만 명, 중국군 100만 명, 민간인 250만 명 사망, 전쟁고아 10만 명, 이산가족 1,000만 명)가 인류역사에 남겼고, 아직도 그 상처가 후손들에 원한의 가슴을 달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 북한의 남침은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었고 미처 피난하지 못한 수많은 인사들이 체포되어 인민재판을 받고 희생되었다. 또 한때 좌익에 가담했다 우익으로 돌아선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선량한 국민들까지도 무차별 처형되기도 하였다. 이것은 전쟁에서 발생되어 가져온 모든 형태의 살인, 방화, 약탈 등 보복이 이념의 굴래속에 무차별적인 자행되어졌던 것이다. 이는 민족 간의 이념전쟁이 얼마나 바보스럽게 참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크게 반성해야 될 비극이었다.

 

김지영 방방곡곡 뉴스 www.bbg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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