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記 / 전편




2012년 3월24일 토요일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시각, 용흥궁 공원에 8명의 탐방대원이 집결했습니다. 한원식 박사님,수경 한오연 선배님, 村老 이동용님, 순무깍두기 윤완섭님, 바비 강향선님, 니키크드만 김옥희님, 오키친구 유은숙님, 초록잉크 김보형(이상 나이順) 등이  강화 관광지도를 앞에 두고 오늘 답사 코스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용흥궁 공원>> 궁성 서문밖 판당 추정지>> 국화리 용장사 터>> 강도중성 선기문 터>> 시루뫼 고개>>충렬사(선원사 터)>> 찬우물로 이어지는 약 7Km 코스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날 찬바람이 엄청 불어대는 바람에 도보 탐방을 포기하고 차량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번째  방문지가 고려 강도시대 선원사 터로 추정하는 선원면 선행리에 있는 충렬사입니다.
26忠臣의 절개를 닮은 파란 하늘 밑으로 막 참배를 마치고 곧은 길을 걸어 나오는 한 강화인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조선시대 충렬사가 세워지기(1641년) 전 까지는 왕실에 과일,꽃,나무 등을 조달하는 장원서(掌苑署)의 과수원이었던 곳입니다. 이 앞에는 저천(猪川)이라는 내가 흐르는데 고려시대에는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혈구산 밑에 있는 황련사도 잠깐 둘러보고 왔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오키님은 이런데서도 주변 풍광부터 빼놓지 않고 살펴 봅니다. "바비님! 혼자 어디 가시이꺄? 화장실은 이 쪽인데...?"




시루뫼 고개를 넘어 국화리 저수지 쪽으로 우회전 하기 전 삼거리가 강도 중성의 西門인 선기문(宣棋門)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19세기 말까지도 이 바깥 쪽 일대를 서문박(西門外)으로 지칭한 기록이 있어 팔만대장경 판당의 제2 추정지가 되겠습니다.
여기 온 김에 청련사도 들러보자는 다수의 의견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50년 만에 청련사를 다시 와 봅니다.  老巨木이 村老님을 어린 아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절집 앞 화단에 힘겹게 땅 위로 올라 온  복수초의 노란 꽃이  꽃샘 바람에 오돌 오돌 떨고 있더군요... 바비님과 오키님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요... 달려가서 요리조리 뜯어보고 쓰다듬고 사진 찍는 동안 남자들은 뒤에서 또다른 꽃들이 하는 짓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꽃을 감상한 여자들에게나 꽃을 감상하는 꽃을 감상한 남자들에게나 봄은 설레임의 계절입니다. 계단 돌틈 하나 하나에서도 봄의 기운이 느껴져 발걸음마저 가벼운데... 즐거움이 한껏 묻어나는 한오연 선배의 얼굴은 점점 바비님의 잠바 색깔같은 설레임으로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읍내로 들어와 강화부성 남문이 내다 보이는 해물탕집 이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탕이 끓기 시작하자 윤완섭 소믈리에(?)가 막걸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찬우물 고향막걸리로 건배 들어갑니다. 강화에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합천 해인사에 가있는 고려 팔만대장경을 위하여~~!! 그리고 대장경 彫成작업을 총괄했던 대장도감과 판당의 위치 발굴, 복원을 위하여~~!!





해물탕, 해물찜에 밥까지 볶아먹고 나니 눈동자의 중심이 딱~ 잡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자들의 수다가 시작됩니다.





식사 도중에 나도살채 이현일님이 합류했습니다.  역사학자 모임인 뿌리회가 주관하는 "정종"에 대한 공동논문 발표회가 전주 이씨 중시조 선묘에서 있었는데 여기 참석했다 오는 길이랍니다. 늦게라도 이렇게 탐방길에 합류해줘 큰 힘이 됐습니다.
나도살채님도 이제 돋보기를 낄 나이가 됐시다... 스마트폰 들여다 보는 모습을 보니 어여 망설이지 말고 돋보기 하나 맞춰야 되갔시다...ㅎㅎ
 




오후 일과를 북산 밑에 있는 외규장각 앞에서 시작합니다.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과는 달리 몹시도 찬바람이 불어대는, 모두를 움추리게 만드는 악천후였습니다. 한박사님이 어디론가 열심히 전화를 하시는데 조금 후에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전화한지 얼마 안돼 한박사님의 국민학교 시절 짝꿍(첫사랑?)이라는 분이 금방 나타나셨습니다. 여기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계신 김옥분님입니다. 촌로님 어린 시절 한동안 같은 집에서 사셨고 저는 근처 합일학교를 다니며 오다가다 많이 마주쳐서 안면이 있는 선배님입니다.
명함이 한 장 밖에 없다 하시니 촌로님은 아예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저장을 합니다. IT강국에 사는 50대 후반 남자의 디지털 마인드가 이 정도일 줄이야...^^ 오키님이 콜롬버스의 달걀 아이디어에 감탄하는 표정입니다.





김옥분 관광해설사님의 해설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고려궁지이지만 20세기에 만들어 위치까지 옮겨온 승평문 외에 고려 유적은 없고 몇몇 조선시대 유적만 있다고 해설해 주십니다. 제가 볼 때, 애초 유적 지정이 잘못되는 바람에 관광해설사들만 곤혹스럽게 만들어 놨습니다.

현재 고려궁지라고 울타리 쳐놓은 곳은 조선시대 강화행궁址, 강화유수부址로 지정하여 복원을 했어야 하고 고려궁지는 강도시절 내성... 그러니까 북산에서 성공회 성마루로 내려와 승평문(남문)이 있던 선원 김상용 선생 비각을 지나 읍사무소 뒷길로 쭈욱 가서 성광교회 언덕으로 돌아 올라가 다시 북산 마루로 연결되는 사각형 라인 안쪽이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복원하기 난감한 내성(궁성)이나, 없는 고려시대 유적은 축소 모형을 만든다든가 고려강도체험관(高麗江都體驗館) 같은 것으로 해결했어야 합니다. 최소한 이정도는 되야  왜 강화사람들이 江都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강화가 남한 유일의 고려시대 유적지인지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에 복원된 외규장각의 내부입니다. 공간을 홍보관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얼마 전에 돌려 받은 조선왕실의궤 등을 1866년 프랑스가 약탈하기 전의 모습대로 실제 보관, 관리를 한다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알맹이가 빠져있는 껍데기는 가치가 많이 떨어지지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수다라장전이나 법보전이 건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이 판전들에 대장경판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김옥분 해설사님의 설명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네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해집니다. "그런데 세 여자는 어디갔어?~ 다 어디갔어~~이거..!" 


후편에서 계속됩니다.
방방곡곡 김보형 기자/ 강화 향토 사학자





                                                                                          탐방記 / 후편




고려궁지에서 내려와 411 강화군수 보궐선거에 출마한 친구 이상복 후보를 만나러 가는 도중, 근처에 있는 살채 철거 현장에도 둘렀습니다. 유적 유무를 확인하는 발굴공사 중이었지만 휴일이라 작업은 휴무였구요.. 견자산 자락인 이곳이 근세에 삭토(削土),굴토(掘土)를 많이 하면서 주택지가 된 곳이라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 흔적도 나오기 힘들겁니다. 아마... 
탐방대원 여러분들은 지금 홍성효님네 화장실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들 계십니다...하하
 




바로 옆에 있는 나도살채 이현일님 집 앞입니다. 조선 숙종 때 쌓으려 했던 견자산 돈대를 그리며 江돌로 성을 쌓았나 봅니다. 5대째 살채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친구의 집에 제가 이참에 이름을 하나 붙여주렵니다. "살채돈대(墩臺)"...





이현일님의 열정적인 설명은 살채를 빠져나가는 길목에서도 식지 않습니다. 걷는 중에도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듣는 둥 마는 둥  홀로 앞만 보고  갈길 가시는 한원식 박사님의 獨步를 이날의 '건방진 포즈'에  선정합니다...^^






전 제주부지사인 이상복 강화군수후보를, 많은 지지자들과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이는 그의 선거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무소속 출마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우리들에게 설명하는 중입니다. 큰 성취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결과가 어찌됐건 친구는 이 일로써 이미 많은 것을 얻고 있으며 앞으로 고향 강화의 발전에 그의 경력과 능력이 크게 쓰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번 탐방의 본론으로 들어가서 궁성 서문 밖 대장경板堂 추정지를 찾아 가는 길입니다. 오늘 꽃샘바람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한박사님의 이 차림새로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건방진 포즈로 슬쩍~ 들이 밀어봅니다만 원조건방의 범접하기 힘든 포스에 금방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한박사님의 이상한 모자가 오키님의 이 연두색 잠바에서 나온겁니다. 덕분에 감기를 피하셨다지요? 아마... 옆에는 오키님의 절친 유은숙님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구요 강화와 강화역사에 애정을 보여주셔서 또한 감사합니다. 그 사랑 변치말아 주시기를...^^ 





고려내성(궁성)의 정남문인 승평문이 있던 자리에서 판당 추정지 탐방 출발합니다. 선원 김상용 선생이 병자호란 때 자폭했던 남문자리도 여기입니다만 이 때의 城은 다른 성으로 조선 전기, 세종 때 쌓은 강화도호부성입니다. 그리고 현재 강화산성이라 칭하며 부분복원 중에 있는 성은 숙종 때인 1710년에 쌓은 강화유수부성이고 이 성의 남문(안파루)은 옛날 강화극장 앞에 있죠..집중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쉬운 부분입니다. 밑줄 쳐 놓으시길...ㅎㅎ
  





고려내성 당시의 서문으로 추정되는 곳에 왔습니다. 사진 중앙의 산 밑으로 강화여고 신축교사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성광교회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살짝 보이는군요. 고려사 기록을 보면
 壬午 幸城西門外大藏經板堂, 率百官行香<
고종 38년(1251년) 9월에 국왕이 성의 서문 밖에 대장경판당(大藏經板堂)에 행차하여 모든 관료들을 거느리고 분향하였다.>라는 팔만대장경의 완성을 자축하는 행사(慶讚會) 내용이 나오는데 이 기록에는 西門이 내성(궁성)의 서문인지 중성(도성)의 서문인지 구별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판당 추정지가 두군데일 수 밖에 없는데 위의 사진장소는 내성(궁성)일 경우에 서문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위성사진에다 당시의 내성(궁성)과 중성(도성)의 위치를 그려 넣었습니다. 내성(적색선)의 서문박을  제1판당추정지로, 중성(황색선)의 서문박을 제2판당추정지로 표시하고, 대장경판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경로이자 우리가 걷고자 했던 탐방로를 파란색 점선으로 표시했습니다. 물론 충렬사 앞을 선원사로,남산(화산) 병풍바위 밑을 행촌 이암 선생의 해운당으로 비정(比定)했습니다. 이 파란색 라인을 강화대장경길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기존의 강화도령첫사랑길과 일부 중복되기는 합니다만...  

이 지도를 보면, 현재 선원면 지산리에 유적 지정된 선원사지는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시 최고 실권자 최우가 자기의 원찰을 세우면서 그것을 도성 밖 성벽 밑에다 지을리가 없거든요. 이때는 궁궐 안에도 10대 사찰을 둘 정도로 불교를 숭상하던 시절인데 최우가 자신의 원찰을 자신이 축성한 도성의 바깥쪽에다 지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 점은 아직까지 어느 학자,전문가도 지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참고로 선원사는 1245년에 완공했고, 중성(도성)은 1250년에 완공했습니다만 공사 시작은 1237년입니다. 지금의 선원사지는 신니동가궐지를 잘못 발굴한 중대한 실책이고 반역사적 폭거입니다. 지금이라도 되돌려놔야 합니다.

이렇게 지도를 그려놓고 조감을 해보니, 중성 서문인 선기문(宣棋門) 바깥 서문박 동네(국화리)를 제2 추정지라고 했습니다만 용장사와 선원사의 중간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과, 복잡한 다운타운을 벗어나 판각같은 정교한 작업을 하기에 적합한 아늑한 장소라는 점, 경판 보관장소인 선원사와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점에서 오히려 이 쪽이 더 유력해 보입니다. 다만 당시 중성(도성)이 완공된지 1년 밖에 안됐기 때문에 성의 서문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기 어려운 짧은 시간이라는 점을 들어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이 중성(도성) 축성이 13년에 걸친 대공사였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대역사였기에 대세가 급격히 이 매머드 구조물로 쏠리지 않았겠는가..하는 의견을 내 봅니다. 내성의 서문인가 중성의 서문인가 하는 문제는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입니다. 고려사 전공학자나 대장경 전문가들도 이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내성 서문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바라본 풍경이니 당시의 서문 밖이 여기가 될 겁니다. 정수장이 있는 북산 자락의 낮은 능선이 병풍처럼 북서쪽을 막고있는 이 일대에 팔만대장경 제작 라인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행정기관인 대장도감이 있었을 내성과 아주 가깝고 인경을 보관했던 용장사와도 지근거리여서 대장경판당으로 괜찮은 입지조건을 가진 제1 판당 추정지입니다.




참고로 당시 내성(궁성)의 범위를 위성사진에 그려봤습니다. 노란색 선 안이 모두 고려궁지이고
그 안에 작은 흰색 테두리 안이 조선시대 행궁지와 강화유수부지가 되겠습니다.





마지막 코스로 연미정이 있는 월곳리에 왔습니다. 연미정과 월곳진을 보러 온 것은 아니구요 이 건너편 쪽에 있는 친환경 오리고기 전문점 '연미정 가든'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연미정을 그냥 지나친 것이 좀 아쉽긴 합니다. 고려시대 말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연미정은 1510년 삼포왜란을 평정하고 말년을 여기서 유유자적하던 황형장군의 기개가 서린 곳입니다만 오늘은 연미정 가든에서 그의 후손을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리고기 성찬이 준비된 밥상에 모두 둘러 앉아 막걸리로 건배를 합니다. 오른쪽줄 위에서 두번째 앉아 계신 분이 오늘 만찬의 호스트인 김봉수님입니다. 논산 나눔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갑수 친구의 친형님이시고 고교 동문 선배님이십니다. 뜻깊은 호의에 대한 감사를 여기 사진과 글로써 남깁니다. 



 
이 집 주인장 내외도 우리의 만찬장을 빛내 주었습니다. 사진 맨 앞쪽 두 분입니다. 강고 동문인 황인엽 사장은 황형장군의 후손으로 그의 사패지를 관리하고 있으며 친환경 농업을 영위하며 향토사랑에 푹 빠져있는 진골 강화인입니다.






순무깍뚜기 윤완섭님과 나란히 포즈를 취해주신 김옥분 선배님은 문화관광해설로 강화사랑을 실천하는 든든한 향토지킴이십니다. 탐방 마무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히 보니 두 분 진짜 오누이 같습니다...^^* 






오늘 탐방 행사의 마무리를 한박사님이 하십니다. 새롭게 알게 된 우리 강화 역사에 대한 소회와, 도와주시고 봉사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를 피력하시고 앞으로도 숨겨지거나 왜곡된 강화역사를
고치고 세우는 일을 이런 고향나들이를 통한 역사탐방에서 부터 시작됨을 강조하십니다. 

즐겁고 유익한 고향땅 어루만지기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뿌듯한 가슴으로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방방곡곡 김보형 기자/ 강화군 향토사학자 http://bbggnews.com